156명이 숨진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부실한 정부 대응 체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태원 일대 치안을 책임지는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사고 발생 15~45분 전인 지난달 29일 오후 9시 30분~10시 사이에 이태원의 위태로운 상황에 대해 알게 됐지만, 시민 안전을 책임지는 업무를 맡는 정부의 양대 축인 경찰청장이나 행정안전부 장관 등 수뇌부에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제때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신속한 현장 지휘나 대응책 마련이 더 늦어져 피해가 커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참사가 난 것은 지난달 29일 오후 10시 15분이었다.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은 오후 9시 30분~10시 사이 용산서로부터 이태원에 인파가 너무 몰려 사고 위험이 있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용산 대통령실 근처 행진 집회가 끝난 후, 식사하던 중에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오후 10시 20분에 이태원 일대에 도착해 지휘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상급자인 서울경찰청장이나 경찰청장에게는 이런 내용을 즉각 보고 하지 않았다. 용산서장이 서울 치안을 총괄하는 김광호 서울청장에게 이 상황을 보고한 것은, 사고 발생 이후 1시간 21분이 지난 오후 11시 36분이었다. 그리고 윤희근 경찰청장이 경찰청 담당자를 통해 보고를 받은 것은 30일 0시 14분이었다. 사고 발생 1시간 59분 뒤다.
정부 내 보고도 느렸다. 재난·안전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이 사고를 알게 된 것은 오후 11시 20분이었다. 그것도 직접 보고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사고 발생 33분 뒤인 오후 10시 48분 소방청 보고를 받은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이 오후 11시 19분 행안부 관계자들에게 긴급 문자를 돌렸는데, 이 문자를 보고 장관 비서실에서 장관에게 1분 뒤 보고를 해, 이 장관이 11시 20분 이 내용을 알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상황실장에게 이날 오후 11시 1분 보고를 받았다. 국가의 행정과 안전을 책임지는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은 대통령보다 보고를 늦게 받은 것이다. 경찰청은 2일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임재 용산서장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지난 29일 일선 경찰부터 최고위 간부까지 이르는 경찰의 보고·지휘 체계는 종일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우선 용산경찰서는 사고 접수 단계부터 부실 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고 발생 약 4시간 전인 29일 오후 6시 34분, 한 시민이 “골목에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다”며 “경찰이 통제를 좀 해줘야 할 것 같다”고 112 신고를 했다. 그 뒤로 사고 발생까지 인파가 몰려 위험하다는 취지의 신고가 10건 더 들어왔다. 이태원 파출소 등의 일선 경찰은 이 중 4건에 대해서만 현장 조치를 하는 등 미온적인 대응만 했다.
윗선으로 향하는 보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용산서장은 이태원에 인파가 넘쳐 사고가 우려된다는 취지의 보고를 오후 9시 30분~10시 사이 받고, 사고가 발생한 5분 뒤쯤인 10시 20분 현장 부근에 도착해 지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광호 서울청장이 그에게서 보고를 처음 받은 것은 사고 발생 1시간 21분이 지난 오후 11시 36분이었다. 온라인 뉴스로 “이태원에서 수십 명이 실신했다”는 취지의 첫 언론 보도가 나온 것은 사고 당일 오후 11시 36분이었다. 서울청장이 사실상 언론보다 이 사건에 대해 늦게 알게 된 셈이다.
경찰서장은 관할 지역에서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거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사건이 생길 경우 즉시 상급 시·도 경찰청장에게 보고를 하게 돼있다. 이 시기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잇따랐던 만큼, 용산서장이 이런 절차를 어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용산서장이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걸 알고도 서울청장에게 1시간 19분이 지난 뒤에서야 알린 건 비상식적이라는 얘기가 많다”고 했다.
상급 기관인 서울경찰청도 이 과정에서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의 112 신고 접수 매뉴얼에 따르면 동일한 장소에서 유사한 내용의 신고가 반복되는 경우, 서울경찰청 상황실에서 신고를 접수하는 사람은 접수 단계에서 상황팀장(경정)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날 참사 전 경찰에 접수된 신고 11건 중 9건이 사고가 벌어진 골목 인근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서울경찰청 상황실 혹은 상황팀장은 이런 내용을 제때 서울청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상황실은 30일 0시 2분에서야 경찰청 상황실에 문서로 사태를 보고했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경찰청 상황담당관으로부터 30일 0시 14분에 전화로 보고받고 알게 됐다고 한다. 사고 발생 1시간 59분 뒤다. 경찰청장이 서울청장에 지시를 한 시간도 오전 0시 19분이었다.
이렇게 무너진 경찰 보고 체계는 참사에 대한 더딘 대응으로 이어졌다. 김광호 서울청장은 30일 0시 25분에서야 현장에 도착해 지휘를 시작했다. 인접 6개 경찰서에 지원 요청이 들어간 것도 0시 20분이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사고 전에 막진 못했어도 사고를 인지한 뒤 곧바로 기동대 인력을 배치해, 인파 통제를 했다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진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했다.
행안부도 마찬가지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사고를 알게 된 것은 오후 11시 20분이었다. 소방청 보고를 받은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이 11시 19분 행안부 관계자들에게 긴급 문자를 돌렸는데 이 문자를 받은 비서실 관계자가 장관에게 이 문자를 전달해 장관이 사고를 알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 참사에 대해 첫 보고를 받은 것은 사고 발생 46분 뒤인 오후 11시 1분이었다. 경찰청장이나 행안부장관 모두 대통령보다 보고를 늦게 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일선 경찰서나 서울경찰청 등에서는 대형 참사가 발생해도 행정안전부로 보고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경찰청에 보고가 올라와야, 경찰청이 행안부로 보고를 하는 게 정식 절차라는 것이다. 결국 이번 참사 때 국민의 치안과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과 행안부는 내부에서 제각각 늑장 보고를 한 데다, 서로 제때 소통도 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