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의 한 부동산업체에 '월세' 상담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다./뉴스1

이른바 ‘빌라왕’ 등의 전세 사기 피해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는 가운데 이사철이 가까워지면서 부동산 시장에선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임차인들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이런 점을 악용해 일부 집주인이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리지 않는 대신 관리비를 크게 높여 받거나, 다운계약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부동산 계약 경험이 적고 종잣돈이 부족한 청년들이 이런 ‘꼼수’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관리비 꼼수’는 지난 2021년 6월부터 시행된 ‘전월세 신고제’ 여파가 크다. 이 제도는 보증금 6000만원 월세 30만원 이상의 임대차 거래는 지자체에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최근 월세 수요가 늘자, 세를 올려받고 싶으면서도 지자체 신고 의무 때문에 임대소득세를 더 내기 싫은 집주인들이 월세 대신 관리비를 올리고 있다.

8일 한 온라인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서 관악구 인근 원룸 시세를 살펴보니, 실평수 20~30㎡(6~9평) 원룸 가운데 월세가 20만원대인데, 관리비가 13만~18만원에 달하는 방이 여럿 있었다. 전기와 가스요금은 별도로 내라고 하는 곳도 많았다. 서울 성북구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A씨는 “대학가 주변 원룸은 월세가 50만원이면 관리비 5만원이 보통 시세인데, 전월세 신고제 이후 월세는 30만원 아래로 낮추고, 관리비는 30만원까지 올리는 식으로 편법 인상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했다.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는 집주인에게 혜택을 준 ‘상생임대인’ 제도로 혜택을 본 사람들이 월세 수요자가 늘었다는 점을 이용해 월세를 올리고 다운계약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상생임대인’은 임대료를 직전 계약 대비 5% 이내로 인상해 2년간 계약을 유지하는 임대인을 대상으로 양도세 비과세 등의 세금 혜택을 주는 제도다.

세종시에 사는 이모(29)씨는 최근 오피스텔 계약 연장을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월세 인상과 함께 다운계약서를 쓰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씨는 현재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5만원을 내고 있는데 “월세를 72만원으로 약 10%를 올리겠다”면서 “새 계약서에는 월세를 기존과 동일하게 표기하고 차액을 현금으로 한 번에 달라”고 한 것이다. 알고 보니 집주인은 상생임대인으로 혜택을 받고 있었다. 이씨는 “집주인이 얄미워 이사를 가고 싶어도 전세 사기가 하도 많다고 해 고민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