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경동극장이 폐업한 뒤 30년간 창고로 쓰이던 시장 구석 공간을 카페로 재단장한 '스타벅스 경동1960'점에 이른 시간부터 청년들이 가득하다. 어르신만 주로 찾던 경동시장에 젊은이들이 오가며 활력이 더해지고 있다. /박상훈 기자

지난 11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설 명절을 앞두고 인삼, 과일 등을 사러 온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에서 2030세대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곶감 파는 가게 앞에서는 청년들이 시장과 스타벅스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지연(23)씨는 “곶감도 사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도 찍고 있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마포구 망원시장도 젊은이들로 붐볐다. 망원시장은 인근에 있는 망리단길이 맛집으로 뜨면서 방문하는 젊은이들이 늘었다. 망리단길 카페에서 열리는 행사를 기다리다 잠시 시장을 찾았다는 박서형(21)씨는 “여기 호떡과 고구마붕어빵이 맛있다고 해서 들렀다”며 “구경하기도 좋다”고 했다.

시장 안 카페 - 지난 1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있는 카페 ‘스타벅스 경동1960점’의 모습. 경동시장 상인들이 창고로 쓰던 옛 경동극장 자리에 카페를 열었다. 소셜미디어(SNS)에 올릴 사진도 찍고 전통시장 쇼핑도 하려는 2030세대가 몰려 평일 오전에도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박상훈 기자

서울시내 전통시장이 변하고 있다. 중장년층이 주로 찾던 전통시장에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가 스마트폰을 들고 몰려오고 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젊은이들 취향을 겨냥한 다양한 시도를 한 결과다.

한약 시장으로 유명한 경동시장은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선 ‘인스타 성지(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통한다. 경동시장에서 만난 이민아(22)씨는 “여기가 유명한 한약 시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레트로(복고)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32년간 인삼 장사를 한 김형부(60)씨는 “예전엔 젊은 사람 보기 어려웠는데 요즘에는 하루에 1000~2000명씩 오는 것 같다”며 “시장에 활력이 생겼다”고 했다.

이는 경동시장이 2017년부터 시작한 ‘경동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의 결실이다. 경동시장은 상인들이 창고로 쓰던 옛 경동극장 자리에 스타벅스를 유치했다. 경동시장 관계자는 “시장 안에 일단 청년들이 찾아올 수 있는 ‘핫플(명소)’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스타벅스에 입점을 제안하면서 ‘미국에도 스타벅스 1호점이 시장 안에 있지 않으냐’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문을 연 ‘전통시장 안 스타벅스’에 젊은이들이 모이면서 그들이 시장의 새로운 고객이 되고 있다. 직장인 김민경(29)씨는 “사진 찍고 커피 마시러 왔는데 시장을 보고 놀랐다”며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아 다음에는 시장 투어도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시장 3층엔 청년들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가도 있다. 900㎡ 공간에 청년 20명이 식당, 제과점 등을 열었다. 사업계획서를 내 경동시장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의 심사를 통과한 이들이다. 중식당을 운영하는 정봉우(38)씨는 “처음엔 임차료가 저렴해 들어왔는데 요즘은 상인들뿐 아니라 젊은 친구들까지 많이 찾아온다”며 “빨리 종잣돈을 모아 프랜차이즈를 내는 게 꿈”이라고 했다.

경동극장이 폐업한 뒤 30년간 창고로 쓰이던 시장 구석 공간을 카페로 재단장한 스타벅스 경동1960점./박상훈 기자

시장 옥상에는 애견 놀이터도 있다. 비어 있는 옥상에 인조잔디를 깔아 만들었다. 애견 놀이터 대표 김효진씨는 “주말에는 하루에 100명 정도가 반려견을 데리고 온다”고 했다.

망원시장은 주변 망리단길의 맛집과 카페를 찾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맞춤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아 효과를 보고 있다. 옷가게를 하는 김성로(61)씨는 “예전에는 주로 중장년층을 겨냥한 옷을 팔았는데 요즘은 젊은이들을 잡기 위해 3벌 중 1벌은 젊은 취향의 옷을 갖다 놓는다”고 했다. 망원시장을 찾은 송민솔(21)씨는 “수면바지 한 벌 값이 5000원으로 마트의 절반 밖에 안 된다”며 “디자인도 내 취향”이라고 했다. 시장 안 식당 중에는 청년들이 쉽게 주문할 수 있게 키오스크를 설치한 곳도 있다.

양천구 신영시장은 일회용품을 줄이는 ‘용기 프로젝트’를 벌여 환경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을 모으고 있다. 포장 음식을 주문할 때 그릇을 갖고 가면 시장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용기머니’를 1000원씩 준다. 신영시장 관계자는 “청년들이 재미있다고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시장도 많다. 청량리종합시장·암사종합시장·노량진수산시장 등 3곳에서는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고 새벽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강인철 서울시 상권활성화담당관은 12일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레트로(복고) 문화가 유행하면서 전통시장이 주목받고 있는 것 같다”며 “젊은 층들이 전통시장을 많이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