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다니는 2학년 A(27)씨는 겨울방학 서울 신촌의 한 학원에서 60만원을 내고 4주 동안 민법 강의를 들었다. 작년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지만 교수가 변호사 시험에 자주 나오는 내용이 아닌, 자기 전공 분야인 ‘법인(法人)’ 개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강의를 했다고 한다. 로스쿨을 졸업해 학위를 딴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야 변호사 자격이 생긴다. 하지만 최근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54%까지 떨어지면서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진 상태다.

A씨는 “이런 와중에 로스쿨에서 변호사 시험 대비를 더 철저하게 해주기는커녕 수업 질이 떨어져 대다수 학생이 학원 강의를 듣는 게 현실”이라며 “한 학기에 8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는데 학원까지 다녀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사교육 강의가 로스쿨을 다닐 때 필수인가?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법학전문대학원 평가위원회가 전국 25개 로스쿨 중 16곳이 ‘기준 미달’이라고 평가한 데 이어, 로스쿨 재학 중인 학생들 상당수가 로스쿨에서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 질에 대해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최근 로스쿨생 70명(수도권 40명, 비수도권 30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 조사를 해보니, 상당수가 “로스쿨에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특히 로스쿨생 중 90%는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로스쿨 수업과 별도로 사교육 강의를 듣고 있다”고 답했다.

로스쿨 수업에 대해 불만족한다는 학생들 다수는 변호사 자격을 결정짓는 변호사 시험과 로스쿨이 따로 놀고 있다는 취지의 문제 제기를 했다. 설문조사에서 “변호사 시험 준비와 학점 대비를 이중으로 해야 한다”(31명·이하 복수응답)거나 “교수가 변호사 시험에 나오지 않는 개념이나 사례를 가르친다”(27명)는 불만이 가장 많았다.

비수도권의 한 로스쿨에 다니는 임모(25)씨는 “어떤 교수는 회사법 강의에서 핵심적인 내용인 ‘주식회사’ 개념은 조금밖에 다루지 않고, 유한회사·합자회사 등 내용만 한 달 넘게 가르쳤다”며 “한 형사소송법 교수는 강의 시간 내내 본인의 법적인 견해만 수업 시간 내내 얘기하기도 한다”고 했다. 수도권 로스쿨에 다니는 김모(26)씨는 “변호사 시험에는 헌법 중 기본권 부분의 비중이 높은데, 막상 ‘통치구조’만 가르치는 수업이 필수로 설정돼 있는 등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로스쿨 학생 다수는 중·고교 학생들마냥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응답자 70명 중 90%인 63명이 온·오프라인으로 변호사 시험 관련 사교육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55명(79%)은 “사교육 강의가 필수”라고 했다. 응답자의 절반(49%)은 매 학기 등록금이나 생활비 외에도 사교육비로만 50만원 이상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비수도권 로스쿨 2학년생 박모(25)씨는 “입학한 뒤로 민법, 형법 등 인터넷 강의만 7개를 들었다”며 “방학 때 별도로 돈을 들여 인터넷 강의로 선행 학습과 복습을 하는 것이 로스쿨생들 사이에서는 정석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전국 25개 로스쿨은 작년 기준 1학기 등록금이 평균 약 701만원이다. 장학금은 2021년 기준 1인당 연 평균 약 480만원을 지급한다. 장학금을 받아도 연간 1000만원 가까이를 학생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사교육비 부담까지 겹치자 예비 법조인인 로스쿨 학생들 대다수는 변호사 시험 관련 강의를 불법으로 녹화한 이른바 ‘어둠의 강의(둠강)’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70명 중 57명(81%)이 “공부를 위해 둠강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권 로스쿨에 다니는 이모(25)씨는 “한 학기에 수업 6개를 들었는데, 등록금을 900만원 가까이 냈다”며 “여기에 생활비는 물론이고, 인터넷 강의까지 돈 주고 듣자니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고 했다.

지역에 있는 로스쿨 학생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된 교수가 부족하다는 불만도 있다. 영남권 로스쿨에 다니는 B(25)씨는 “교수진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는 까닭에 수강신청을 할 때 교수가 정해져 있지 않아 교수 이름도 모르고 일단 신청부터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임시로 한 학기씩만 가르치는 교수들이 너무 많아 수업에 일관성이 없다”고 했다. 지방 로스쿨 학생들 사이에선 이런 환경 탓에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수도권 로스쿨보다 더 낮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치러진 제11회 변호사 시험에서 수도권 로스쿨생은 합격률이 65%, 비수도권 로스쿨생은 45%였다. 이런 점 때문에 지방대 로스쿨을 다니면서 법학적성시험(LEET)을 다시 치러 수도권 로스쿨로 반수(半修)하려는 학생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