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재판을 마치고 나온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법원은 이날 정의기억연대 기부금 1억원을 횡령하는 등 6개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 의원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뉴스1

10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문병찬)는 윤미향 의원에게 적용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유죄로 보기에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검찰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재판부가 증거로 인정되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윤 의원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균형을 잃은 것으로 납득할 수 없다”면서 항소할 뜻을 밝혔다.

◇1억원 횡령액 중 1700만원만 유죄

검찰은 윤 의원이 2011~2020년 정의연(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법인 계좌 자금을 개인 용도로 지출하고, 개인 계좌로 모금한 자금을 임의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200여 차례에 거쳐 총 1억35만원을 빼돌려 업무상 횡령을 저질렀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이 검찰 주장을 인정한 것은 총 68차례에 걸쳐 약 1700만원을 임의로 쓴 것뿐이었다.

재판부는 “윤 의원이 개인 계좌에 보관한 공금을 사용하였는데도 별도로 영수증을 내서 지출액을 보전받는 방식 등으로 횡령을 했고, 아무런 감독을 받지 않은 채 개인 계좌에 공금을 보관해 본인만이 수입·지출 내역을 알 수 있는 상태를 만들었다”면서도 사실상 검찰 측의 수사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기소한 사안 중 윤 의원이 명확한 사용처를 증명하지 못한 경우에도 “검찰이 엄격한 증거로 증명해야 한다”거나 “정의연 활동과 관련해 자금을 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무죄로 판단했다. “위법 가능성이 있다면 검사가 증명해야 할 부분”이라며 검찰이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하지만 현직 판사는 이에 대해 “공익을 내세우는 단체에서 개인 계좌에 공금을 섞어 쓰고, 사용처를 입증도 못하는 건 그 자체가 심각한 문제인데 자칫 법원이 이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비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길원옥 할머니 기부 강요 “근거 부족”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치매 상태임을 이용해 2017년 1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국민 성금으로 받은 1억원 중 7920만원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등에 기부·증여하게 만든 준사기(準詐欺) 혐의도 당초 검찰이 윤 의원에게 적용한 핵심 혐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역시 법원은 “입증이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길 할머니가 “2012년 10월 치매 진단을 받은 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그가 어떤 시점부터 기부 관련 의사 결정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심신장애 상태였는지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할머니가 2017~2018년 직접 일본으로 가서 재일조선학교에 기부금을 전달하거나 2020년 양자를 입양하기도 한 점도 기부 당시 치매 정도를 단정할 수 없는 근거라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할머니 의사가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는 건 재판부의 추측성 판단에 불과하다”고 했다.

◇박물관 등록 하자 있더라도, 보조금 부정 수령은 아니야

검찰은 윤 의원이 운영하던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 학예사가 없어 박물관 등록 요건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학예사가 있는 것으로 꾸며 약 3억원의 보조금을 받은 혐의를 적용했다. 재판부는 “박물관 등록에 하자가 있었다고 평가할 여지도 있다”면서도 학예사 유무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본질적인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은 “보조금 지급의 전제인 박물관 등록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면서 보조금을 부정하게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 반박했다.

◇고가 매입 논란 피해자 쉼터 “시세 반영 안 했단 증명 안 돼”

검찰은 윤 의원이 2013년 9월 안성 쉼터를 짓기 위한 부동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주변 시설이나 접근성을 따지지 않고, 당시 4억원 안팎인 주변 시세를 확인하지도 않고 7억5000만원에 매입해 정의연에 손해를 입혔다며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했다. 이 또한 법원은 “당시 시세가 4억원 안팎인지 정확하게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법원은 또 안성 쉼터가 숙박업소처럼 활용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할머니 관련 프로그램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정의연과의 관계를 고려해 대여 비용을 할인해주기도 한 것으로 볼 때 영리적인 숙박업소로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라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서는 애초에 검찰 수사 자체가 미진했던 것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