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강원 강릉 안현동의 한 주택 앞. 마당에는 개집과 개 밥그릇이 불에 타 검게 그을려 있었다. 개집 옆에는 붉은 색 줄이 바닥에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는데, 날카로운 물건으로 자른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 좁은 공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개는 불길을 피해 탈출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비영리단체 동물자유연대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한 산불 피해 현장의 모습이다.
14일 단체에 따르면, 이번 강릉 산불 피해 현장에선 이처럼 동물 목줄이 끊겨 있는 장면들이 포착됐다. 진화 작업에 나선 소방대원과 인근 동물보호소 직원들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꽁꽁 묶여있던 반려견들의 목줄을 끊어 도망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조치 덕분에 이번 산불 현장에선 반려동물의 피해가 과거 대형산불 사례에 비해 크지 않았다고 한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조선닷컴에 “2019년 고성 산불 현장을 찾았을 땐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목줄에 묶여 숨진 반려견들이 많이 목격됐다”며 “이번 안현동 현장에선 동물이 대피할 수 있도록 목줄을 끊었다고 들었다. 이 때문인지 이전에 비해 반려견 피해가 적었다”고 말했다. 불을 피해 목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마을을 헤매는 개도 있었다고 한다.
단체는 현재까지 탈출하다 차에 치여 죽은 반려견 1마리, 줄에 묶인 채 숨진 반려견 2마리, 축사에 갇혀있던 닭, 염소 등 사체 170여 마리를 발견했다. 이번 산불 현장에서 숨진 80대 주민이 기르던 진돗개는 다리를 절뚝일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주인을 잃은 반려동물들은 강릉시 동물보호소로 옮겨졌다. 동물명예보호감시원들과 지역 동물협회 관계자들이 유실 동물을 발견해 보호소에 신고하면, 보호소는 동물을 넘겨받아 보호하다가 주인에게 돌려보내고 있다. 보호소는 반려견 9마리, 반려묘 1마리 등 10마리를 보호하고 있으며 이들 중 반 이상은 주인을 찾은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