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4년간 100억원대 예산을 투입한 ‘중증 장애인 공공 일자리 사업’의 주요 활동이 ‘집회와 캠페인 참여’인 것으로 1일 나타났다. 전임 박원순 시장 시절 시작된 이 사업은 뇌병변·자폐 등을 앓는 중증 장애인도 스스로 일할 수 있는 공공 일자리를 만들어준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런 공공 일자리 ‘활동’에는 집회 참여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 김종길 서울시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2022년 중증 장애인 공공 일자리 활동 1만7228건 중 과반인 50.4%(8691건)가 집회 참여나 캠페인 활동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편의시설 모니터링(17.2%), 문화예술 공연·연습(15.4%) 등 다른 활동은 비율이 작았다.

이 사업이 시작된 건 중증 장애인에게도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기존 장애인 대상 공공 일자리 사업은 대부분 경증 장애인이 참여했다. 몸을 움직이는 데 상대적으로 제약이 덜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증 장애인에게 별도로 공공 일자리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을 중심으로 나왔고 서울시가 받아들였다.

전장연 박경석 대표가 단장을 맡았던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 장애인 맞춤형 공공 일자리 협업단’은 지난 2019년 서울시에 제출한 제안서에서 “시장 내 경쟁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고용률이 낮은 최중증 장애인에게 우선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하는 공공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공공 일자리로는 장애인 차별 진정 활동, 지역사회 장애인 인식 개선 활동 등을 제안했다.

이 일자리 사업 참여 기관의 70~80%는 전장연 관련 기관으로 채워졌다. 사업 첫해인 2020년은 11곳 중 9곳(81.8%)이, 올해는 25곳 중 18곳(72%)이 전장연 관련 기관으로 나타났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일부 기관은 사업 결과 보고서에서 불법 집회를 주요 성과로 거론했다. 사업 결과 보고서에 자신들의 집회·시위 장면을 넣어놨는데, 이 중 불법 집회도 포함됐다.

한 전장연 관련 기관은 2021년 11월 24일 중랑구 버스정류장 인도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했는데, 실제로는 차도로 내려가 버스 운행을 1시간 막았다. 또 다른 기관은 2021년 11월 12일 국회 앞에서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 집회에서 공공 일자리 사업을 확대하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중증 장애인 공공 일자리 사업에 지난 4년간 141억원을 투입했다. 사업 규모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사업 첫해인 2020년에는 6개월간 26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11억9000만원을 들였는데, 올해는 12개월간 400명에게 58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연간 예산이 4년째에 5배로 늘어난 것이다. 서울시는 매월 이들의 근무일지를 살펴보고, 매년 사업 결과보고서를 받았지만 불법 집회 등을 문제 삼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전장연 관계자는 “서울시 공고에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기 위한 기자회견 등이 이 일자리의 직무로 명시됐다”며 “일자리에서 집회 비율이 높다는 것은 오히려 일자리 참여자가 잘하고 있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김종길 시의원은 “중증 장애인에게도 일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중증 장애인이 서울시민 세금을 받는 공공 일자리 활동으로 대로를 기습 점거하거나 시내버스 운행을 막는 불법 집회를 진행한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중증 장애인 일자리는 중증 장애인도 일터로 출퇴근하면서 일반인처럼 일과를 누릴 수 있게 한다는 개념”이라며 “중증 장애인이 집회나 캠페인에 나서게 하는 것보다는 장애별로 할 수 있는 일을 세세히 파악해 그 일을 하면서 조금씩 능력을 쌓아가도록 하는 일자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