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선’. 눈시울이 붉어진 서지원(29)씨는 연단에 올라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그는 평생 각막이 비정상적으로 얇아지는 원추각막을 앓았다. 서씨는 태어난 지 29년이 됐지만 이날 자신을 13살이라고 소개했다. 서씨는 “평생 앞을 보지 못하고 살다가 13년 전 각막을 기증 받아 새롭게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다”며 “각막을 받은 날을 두 번째 생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각막을 얻고 앞을 보게 된 이후 새로운 직업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5년 동안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현재 경남 창원시에서 문화기획사를 운영하며 카페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서씨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선택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끝으로 연단에서 내려왔다.
이날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운동본부)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을 위한 특별 사진전인 ‘장미-찬미’의 오픈 기념식을 열었다. 사진전은 오는 15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에서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11가정과 장기이식인 10명의 회복된 일상 사진 60여 점을 선보인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자 50명의 사진과 이식인의 감사 편지를 들을 수 있게 한 오디오북도 접할 수 있다.
이 행사에서는 지난 2014년 중학교 3학년 때 췌장을 이식 받아 소아당뇨 투병 생활을 끝마친 피아니스트 이승진(38)씨의 피아노 헌정 연주도 이어졌다. 뇌사 기증인으로부터 췌장을 이식 받은 이씨는 “두 번째 삶을 허락한 기증인과 가족께 이 연주를 헌정한다”며 “피아노를 마음껏 연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감사하다”고 했다.
한편 사진전에서는 지난 2021년 세상을 떠난 어린 딸 전소율양의 장기기증을 결정한 아버지 전기섭(46)씨가 이식자 가족에게 받은 편지도 공개됐다. 아버지 전씨는 최근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딸의 심장을 이식 받은 아이가 건강을 회복해 돌잔치도 하고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전씨는 이 편지 덕분에 큰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이 편지에는 “소율양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참 많이 울었다”며 “우리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게 보답이라 생각하며 평생 이 은혜 잊지 않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운동본부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이 서로 알 수 없도록 정보 공개를 제한하고 있어 전씨처럼 편지를 받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행사 말미에는 뇌사 장기기증인(도너패밀리) 유족 대표로 참석한 신경숙(57)씨가 평소 딸을 생각하며 썼다는 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그는 이식자와 기증자가 서로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의미의 분홍색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행사에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