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한국에서 활동하며 첨단 의료 로봇 기술 파일 1만여 건을 중국으로 빼돌린 혐의로 중국 국적의 연구원 A씨를 붙잡았다고 7일 밝혔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는 이날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40대 중국인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빼돌린 기술은 로봇 관련 핵심 기술이다. A씨는 중국 정부의 해외 인재 유치 사업인 ‘천인계획(千人計劃)’의 지원을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인계획은 명목상 인재 지원 사업이지만, 중국 산업스파이를 양산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중국에서 의공학 분야 석사를 마치고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지난 2005년 한국에 왔다. A씨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 한 대형 병원 산하 연구소에서 의료용 로봇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A씨는 근무 기간 중 심혈관 중재 시술(스텐트) 보조 기술을 비롯해 첨단 의료 로봇 기술 파일 1만여 개를 중국으로 무단 반출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심혈관 중재 시술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히거나 좁아졌을 때 가느다란 철선을 넣어 복구하는 시술이다.
A씨가 유출한 자료는 대부분 실험 데이터와 설계도면, 소스코드 등으로 의료 로봇 기술에 핵심적인 자료다. 연구소 차석 연구원으로 재직했던 A씨는 접근 권한이 없거나 담당 분야가 아닌 자료도 USB로 옮겨 유출했다고 한다. A씨가 중국에 유출한 기술은 상용화를 앞두고 있었고, 6000여 억원의 시장 가치가 있는 기술이라고 한다.
A씨가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의료 로봇 기술은 심혈관 중재 시술 보조 기술 등 3건인데, 이 기술들은 국책사업으로 선정돼 100억원의 국비가 지원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근무한 병원에 국비가 투자되면서 이 병원은 해당 의료 로봇 기술 분야에서 국내 최상위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A씨는 병원뿐 아니라 10년 이상 국내 로봇 공학 관련 연구소와 기업 등에서도 근무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 2020년 연구소 퇴사 후 다른 기관에 취업했다가 중국으로 출국했다. 경찰은 A씨 관련 기술 유출 혐의를 포착해 수사하다가 지난 3월 재입국하던 A씨를 인천공항에서 붙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현재 출국 금지 상태다. A씨가 유출한 기술은 국가 핵심 기술에는 포함되지 않아 경찰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기술보호법이 아닌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면 형이 줄어들 수 있다.
A씨는 탈취 자료를 본인의 업적인 것처럼 꾸민 뒤, 중국 정부의 ‘천인계획’ 프로젝트에 지원해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도 파악됐다. 천인계획은 중국의 해외 인재 유치 사업으로, 중국 정부가 전 세계 과학자들을 적극 영입해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A씨가 애초에 기술을 중국에 빼돌리려는 목적으로 한국에 온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면서 “A씨는 자신이 유출한 기술을 상용화하는 법인을 중국 현지에 설립하려고도 했다”고 밝혔다.
천인계획과 관련한 산업 기술 유출 사건은 국내에 이번이 두 번째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소속 B 교수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자율주행차량 기술인 ‘라이다’ 관련 자료를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라이다는 ‘자율주행의 눈’으로 불리는 핵심 기술이다. B 교수는 천인계획에 참여해 33억원가량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인계획(千人計劃)
중국 정부가 2008년부터 산업 발전에 필요한 첨단 기술과 지식을 흡수하겠다며 세계적으로 뛰어난 학자 1000명을 지원한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각국의 기술이 중국에 흘러들어 간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사실상 ‘중국 산업스파이’ 양산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중국은 천인계획이 국제사회로부터 비판받자 이를 자국 내 인재 육성 프로그램 위주인 ‘만인계획’으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