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재현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가 올 9월에 종료됩니다. 김 대법원장의 6년, 어떻게 보시는지요?
2017년 9월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다음 날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면담을 위해 춘천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상경한 모습, 법원 내 핵심 요직인 법원행정처 출신이 아닌 법정에서 사실심 판결만 해온 판사라는 점, 대법관 경험 없이 바로 대법원장에 임명되었다는 점에서 대법원에 새로운 ‘정의’를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저도 한껏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6년간 김 대법원장은 ‘정의’에 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보시나요?
대법원장의 명함엔 영문으로 직위를 ‘CHIEF JUSTICE’로 명기하고 있습니다. 판사들이 대법원장을 약칭으로 ‘CJ’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의’를 직위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입니다. 그러므로 대법원장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모두 정의로워야 합니다.
첫째, ‘사법 독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5월 22일 사표를 제출한 임성근 부장판사와 면담했을 때 김 대법원장은 “더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 그치?”라고 말했습니다. 국회의 법관 탄핵을 이유로 사표를 반려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사법부 독립을 지켜야 하는 수장이 사법부 독립을 온전히 다 저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둘째, ‘인사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22년 4월 초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일부 판사들이 ‘법원장 2년’이라는 인사 기준과 관행을 어기고 3년씩 법원장을 지내는가 하면 인사 관례를 깨고 지방법원 지원장 근무 직후 서울중앙지법에 발령되는 일이 반복됐다. 이에 대한 해명을 요청한다”라는 공문을 법원행정처로 발송했습니다. 5년 동안 이루어진 코드인사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 굵직한 현안을 담당한 판사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4년 연임된 건 여러 논란을 낳았습니다.
셋째, ‘재판 지연 문제’입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첫 인터뷰에서 ‘사실심만 30년 한 판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임기 초부터 ‘좋은 재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최악의 재판 지연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대전 특허법원에서 근무하는 고법 판사는 “재판의 실패,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글을 법률신문에 기고했습니다. 이 고법 판사는 현재의 재판 지연에 대해 사건을 덜 처리하는 법원, 점점 더 길어지고 만족도도 높지 않은 재판, 오래되고 어려운 사건은 미루는 재판이라고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참으로 타당한 의견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치화된 대법원 문제’입니다. 2018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 후보가 TV토론에서 친형 입원과 관련한 발언으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2020년 7월 16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으로 공개할 의무가 없는 질문에 대해 일부 사실을 소극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허위사실의 공표라고 할 수 없고, 말하는 배경이나 맥락을 보지 않고 일률적으로 엄격한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활발한 토론을 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2심에서 유죄가 난 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소극적 거짓말은 허위가 아니라는 의견을 냈던 권순일 대법관은 지금 여러 구설에 올라 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재임 동안 약 100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민감한 정치·이념·노동 사건들이었습니다. 작년 11월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현대자동차 불법 파업 손해배상 사건’에선 불법 파업으로 재산상 손해를 끼친 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를 어렵게 하는 ‘노란봉투법’의 쟁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향후 대법원장과 대법원이 나갈 방향은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대법원에서 ‘여의도 문법’이 통해선 안 됩니다.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법관이 대법원으로 와선 안 됩니다. 지금의 정치는 옳고 그름의 세상이 아니라 좋고 싫음의 세상입니다. 정치적 성향이 맞으면 그 사람이 어떤 불법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지켜야 합니다. 이러한 정치 논리에 대법원이 휘둘려선 안 됩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후보자는 “탁월한 법률적 식견이 있는가?”, “어떠한 정치적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옳은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주저함 없이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