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성들이 제일 많이 찾는 식재료예요.”

충남 논산시 화지중앙시장에서 한 결혼 이주 여성(오른쪽)이 먹거리를 구입하고 있다.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에서 온 여성 손님을 위해 시장 곳곳에 외국어 간판이 걸렸다. 음식 이름을 베트남어로 한국어보다 더 크게 적어놓은 쌀국수집도 있었다. /신현종 기자

최근 찾은 전북 정읍시의 샘고을시장. 이 시장에서 과일 등을 파는 가게의 베트남 직원 쭉니(29)씨가 향신 채소인 고수를 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고수를 다듬던 쭉니씨는 열대 과일 두리안과 망고가 배달돼 들어오자 바삐 움직이며 진열대를 정리했다. 진열대엔 또 다른 열대 과일인 코코넛 7개와 망고스틴 30여 개가 각각 빨간 바구니에 담겨 있기도 했다. 전통 시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과일들이다.

이 가게 사장 이모(77)씨는 “두리안이나 망고 같은 열대 과일은 가져다 놓으면 동남아에서 온 이들이 다 사 간다”며 “손님 중 절반 이상이 결혼 이주 여성”이라고 했다. 외국인 직원과 일한 지도 1년쯤 됐다고 한다. 가게 진열대에는 코코넛밀크, 피시 소스 등 태국과 캄보디아식 소스들과 베트남 라면 등이 채워져 있었다.

그래픽=김성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생기를 잃어가던 지방 전통 시장들이 결혼 이주 여성들 덕분에 활기를 되찾고 있다.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에서 온 결혼 이주 여성들이 각 지역의 인구 빈자리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전통 시장에선 이들이 자주 찾는 열대 과일이나 외국 향신료 등을 준비해 놓고, 가게 이름과 원산지 등을 동남아어나 영어로 적어 놓고 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모(53)씨는 “어르신들만 오던 시장이라 곧 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컸는데 결혼 이주 여성들 덕에 시장 수명이 한 8~9년은 연장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결혼 이주 여성 손님을 위해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국가별 인사말이 적힌 표지판을 세우기도 했다. ‘신차오(베트남어)’ ‘쿠무스타 포(필리핀어)’ ‘사와디카(태국어)’ 등이다. 그는 웃으며 “우리 시장을 지나다니는 젊은 사람 중 90%가 결혼 이주 여성들이다 보니 인사말이라도 적어 놓으면 친근하게 느끼지 않을까 해서 3년 전쯤 설치했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시의 동상시장에는 결혼 이주 여성 등 외국인을 위한 ‘다문화 식재료 특화 거리’가 있다. 외국 식재료를 팔거나 아예 외국인이 운영하는 등 가게가 30여 개 있다고 한다. 동상시장 상인회는 결혼 이주 여성 손님 등이 늘어나자 2017년 11월 다문화길을 조성했고, 지난 2월에는 어느 가게에서 무엇을 파는지를 베트남어나 캄보디아어 등으로 병기한 간판을 새로 달았다.

이곳에서 베트남인 아내와 베트남 식료품점을 운영 중인 조용언(53)씨는 “베트남에서 많이 먹는 과일인 코코넛이랑 망고스틴을 주력 상품으로 팔고 있다”며 “손님 대부분이 결혼 이주 여성이라 이들이 없으면 장사 못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했다. 동상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다문화길은 동남아 향신료와 식자재들로 냄새부터 다르다”고 했다.

충남 논산시에 있는 논산화지중앙시장에도 외국어가 적힌 간판이 시장 곳곳에 걸려 있었다. 시장 내 베트남 쌀국수 가게는 음식 이름을 전부 베트남어로 크게 적어 놓고, 한국어는 괄호 안에 조그맣게 적어 놓기도 했다. 이곳에서 22년째 과일 장사를 해온 박임향(50)씨는 “우리 상인들에게 결혼 이주 여성들은 예상치 못한 손님이었지만 이들 덕에 매출이 30%가량 늘었다”며 “시골에 사는 사람이 줄어드니 장사를 접어야 하는 건지 고민했는데 이제 더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상인회장 강현진(60)씨는 “고령화가 심하다보니 시장 찾는 이들이 없어 힘들었는데 결혼 이주 여성들이 많이 와줘서 상인들이 고마워하고 있다”며 “상인들에게 항상 외국인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야 한다고 자주 공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