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일본 도쿄 도심(都心)의 글로벌 금융지구인 마루노우치. 2000년대 특구로 지정되면서 각종 건축 규제가 완화된 곳이다. 덕분에 30~40층 복합 빌딩 단지로 거듭났다.
빌딩 숲 사이 고풍스러운 3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1894년 들어선 마루노우치 최초의 서구식 건물인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 뒤로 34층(170m) 높이의 빌딩이 서 있었다. 빌딩과 미술관 사이 작은 정원에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낸다. 문화재 주변에는 건물을 높게 지을 수 없는 서울과 달리, 아예 문화재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문화재 옆 빌딩이 말이 되느냐”고 물으니 아야카(26)씨는 “문화재는 사람들이 많이 보고 즐겨야 더 빛나는 것 아니냐. 한국은 그냥 두고만 보느냐”고 되물었다. 이 건물은 1968년 해체됐으나 2010년 옛 모습 그대로 재건됐다.
문화재를 품고 있는 빌딩도 있다. 2003년 일본공업클럽회관 건물을 감싸는 형태로 30층짜리 빌딩이 세워졌다. 집 위에 집을 지은 모습이다. 일본공업클럽회관은 1920년 5층 규모로 처음 지어졌고, 일본 내 몇 안 되는 시세션(secession) 양식 건물이었다. 빌딩 관계자는 “빌딩을 지으면서 낡은 회관 건물도 내진 성능을 강화하는 등 재건축했다”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이 됐다”고 말했다.
도쿄는 국가중요문화재인 도쿄역 앞에도 30~40층 빌딩이 즐비하다. 2013년 완공한 JP타워는 38층(200m). 도쿄역과 불과 50m 떨어져 있다. 이 빌딩 6층에 있는 ‘키테(KITTE) 전망대’는 마루노우치 일대를 볼 수 있는 관광 명소다. 도쿄 시민은 물론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 건물 안에도 문화재가 남아 있다. 과거 이 자리에 있던 우체국의 외벽을 그대로 남겨 뒀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건축사 김미화씨는 “도쿄에는 이런 식으로 유산을 남기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 곳곳에는 동네 작은 공원의 리모델링도 한창이다. 2017년 도시공원법을 바꿔 ‘파크-PFI’란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민간 사업자가 자기 돈을 들여 낡은 공원을 리모델링하고 공원 일부 공간에 가게를 짓거나 푸드 트럭을 내 그 임대 수익으로 공원을 관리·운영하는 방식이다.
시부야 기타야공원은 지역 주민들도 잘 모르는 동네 공원이었지만, 2021년 이런 방식으로 리모델링을 한 뒤 관광 명소가 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커피 전문점 ‘블루보틀’이 입점했기 때문이다. ‘힙한’ 공간을 찾던 블루보틀이 먼저 입점 제의를 했다고 한다.
기타야공원은 민간 사업자 ‘도큐’가 자기 돈으로 공원을 정비하고 2층 건물을 세웠다. 처음엔 주변 상인들이 반대했지만 유동 인구가 늘면서 오히려 상권이 살아났다. 기타야공원 사업에 참여한 건축가 이토 마사토(40)씨는 “하루 평균 공원 이용객이 1년 사이 1만5000명에서 1만8000명으로 20% 증가했다”고 했다. 도큐는 임대 수익으로 미술 작품 전시 등 이벤트를 열어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도쿄 역사 뒤쪽은 앞쪽과 달리 ‘그랑루프’라는 천막을 세우고 광장을 만들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도쿄역을 가리는 형태로 낡은 백화점 겸 철도회관 건물이 서 있었다.
도쿄도(都)는 도쿄역 뒤편에 탁 트인 광장을 만들기 위해 ‘용적률 이전’ 제도를 활용했다. 철도회관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이 건물이 갖고 있던 용적률을 주변 건물에 팔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용적률 판매 수익으로 건물을 모두 철거했고, 도쿄도는 그 자리에 대형 천막을 설치해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그랑루프’ 광장을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