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 오송 궁평2지하차도 침수는 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에 발생했다. 미호천교 인근의 제방 일부가 무너지면서 하천 물이 지하 차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궁평2지하차도는 길이 430m, 높이 4.5m, 편도 2차로로 평소 30초에서 1분이면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하 차도는 갑자기 쏟아져 내린 물로 2~3분 만에 가득 찼고, 이곳을 지나던 차량은 속수무책으로 갇혔다. 지하 차도 안에 배수펌프 4대가 있었지만, 전기 시설이 물에 잠겨 배수펌프는 작동되지 않았다고 한다. 신고받고 출동한 구조대가 9명을 구조했지만,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소방 당국은 고립된 인명 구조를 위해 1분당 3만L를 배수할 수 있는 대용량 방사 시스템을 투입해 지하 차도 배수 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지하 차도가 이미 6만t의 물로 가득 차 있었고, 계속된 비와 하천 물 유입으로 구조에 난항을 겪었다. 16일 오전 4시 33분쯤 물에 잠긴 버스의 형체가 처음 확인됐고, 수색에 나선 소방 당국은 버스에서 시신 5구를 발견했다. 이 버스는 청주 지역을 오가는 747번 급행 버스로, 폭우 때문에 기존 노선에 있던 도로가 통제돼 궁평2지하차도로 우회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사망자 가족과 지인들은 이번 사고가 인재라고 주장했다. 미호강의 홍수 관리를 담당하는 금강홍수통제소는 사고 당일인 15일 오전 4시 10분 미호강에 홍수경보를 발령한 뒤 충북도·청주시·흥덕구청 등 76곳에 통보문을 보냈고, 각 기관 담당자에게도 문자를 발송했다. 오전 6시 30분쯤 ‘심각’ 수위를 넘어서 수위가 9.2m에 다다르자 금강홍수통제소는 6시 34분쯤 유선전화로 흥덕구청에 교통 통제와 주민 대피 등 필요성을 통보했다. 하지만 흥덕구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흥덕구청 관계자는 사고 직후 본지 통화에서 “금강홍수통제소에서 아무런 연락도 받은 적 없다”고 했다가 이튿날 통보받은 사실이 있다고 했다. 청주시 관계자는 “‘계획 수위에 도달했으니 주민 대피와 같은 주민 통제를 담은 지자체 매뉴얼에 따라서 조치를 해달라’는 말은 들었다”며 “하지만 교통을 통제하라는 말은 없었다”고 했다. 금강홍수통제소 측은 “통제라는 것이 교통 통제를 비롯한 주민 안전을 위한 통제라는 것인데 왜 그렇게 해석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번 사고를 유발한 제방이 애초 부실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고 현장 인근에서는 청주 시내와 오송을 잇는 미호천교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임시로 쌓은 제방이 유실됐다. 궁평1리 전 이장 장찬교(68)씨는 사고 발생 1시간 전 미호천교 공사 현장을 찾았다가 근로자 3~4명이 굴착기를 동원해 제방에 모래를 쌓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는 “현장 감리단장에게 ‘장난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허술하게 쌓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30분 넘게 항의했다”며 119 신고까지 했다고 한다. 공사 주체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관계자는 “지난 7일 이미 모래 다지기 방법으로 기존 둑보다 1m 높게 제방을 높였다”며 “당일 비가 많이 와 더 안전하게 보강 작업을 했을 뿐인데 많은 양의 비에 하천 물이 넘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고와 같은 ‘지하 공간’ 침수 참사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 7월에는 부산 초량 제1지하차도가 침수돼 3명이 희생됐다. 또 작년 8월엔 서울 도림천이 범람하면서 반지하 빌라의 일가족 3명이 숨지고, 작년 9월에는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인근 하천 물이 넘어 들어가 주민 7명이 사망했다.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정부는 각종 대책을 내놨지만, 참사는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일례로 정부는 이미 4년 전에 지하 차도 침수를 대비한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이번 충북 청주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사고에는 작동하지 않았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19년 2월 침수 우려가 있는 전국의 위험 지하 차도 145곳을 1~3등급으로 나눠 관리하게 했다. 이번에 침수 사고가 난 궁평2지하차도는 이 중 3등급으로 호우경보가 발효되면 통제해야 했다. 청주시에는 사건 전날인 14일 낮 12시 10분부로 호우경보가 발효됐지만, 궁평2지하차도는 통제되지 않았다. 충북도 관계자는 “행안부의 지침은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지자체별로 판단하게 돼 있다”며 “통상 지하 차도 중심부에 물이 50㎝ 이상 들어차야 사전에 교통 통제를 한다”고 했다.
☞지하에 물 들어찰 땐…
행정안전부는 침수가 시작된 지하 차도나 지하 주차장은 절대 진입하지 말고, 이미 진입한 차량은 신속히 대피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차량이 침수되기 시작하면 타이어가 3분의 2 이상 잠기기 전에 차량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전문가들은 폭우 시에는 지하 공간 등 상습 침수 구역 진입을 피해야 하며, 물이 들어찬 차는 버리고 높은 곳으로 몸을 피하라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