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숨진 해병대원 고(故) 채수근 상병(20)의 시신은 20일 마린온 헬기로 포항 군 병원으로 옮겨졌다. 동료 해병들은 마린온이 착륙하는 장면을 침통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마지막 인사 - 경북 예천 수해 지역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다 희생된 고(故) 채수근 상병을 태운 마린온 헬기가 20일 밤 12시 45분쯤 전우들의 경례를 받으며 예천스타디움에서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軍)은 재난 지역 실종자 수색 같은 대민(對民) 지원을 ‘작전’이라고 부른다. 군 관계자는 “군인이 투입되는 모든 활동이 작전”이라며 “삽질을 하고 페인트칠을 해도 군인이 하면 모든 게 작전”이라고 했다.

그러나 채 상병의 죽음을 계기로 “군 장병들이 언제까지 그런 ‘작전’을 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실종자를 찾기 위해 산 사람(장병)을 위험한 곳에 몰아넣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재난이나 참사 때마다 의례적으로 이뤄지는 ‘군(軍) 병력 투입’은 이제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채 상병은 지난 19일 예천 내성천 안에 들어가 다른 장병들과 인간띠를 만들어 실종자 수색을 했다. 작업 도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고, 14시간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채 상병은 포병 대대 소속이어서 해병대이지만 수중 훈련 경험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2018년 해병대를 전역한 정모(26)씨는 “포병 대대원을 수중 수색 작업에 투입한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해병대라고 하면 뭐든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도 문제고, 그런 여론에 떠밀려 아무 현장에나 막 투입하는 군도 문제”라고 했다.

지난 2019년 한국인 승객 2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된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현장에도 해군 해난구조대 7명 등이 투입됐다. 그러나 정작 헝가리 당국은 “(구조대원의) 생명을 위협할 만큼 위험하다”며 선체 진입을 금지했다. 이때 우리 정부는 유가족들이 요구한다며 수차례 잠수요원의 선체 내 수색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헝가리 측은 결국 선박 자체를 인양해 사고를 수습했다. 지난해 해군을 전역한 대학생 유모(23)씨는 “작년 강원도 강릉, 동해에서 산불 났을 때 아무런 안전 장비도 없이 물 펌프 하나 들고 불을 끄러 다녔다”며 “바로 옆으로 나무가 쓰러지며 죽을 뻔한 위기도 있었다. 그때 ‘마치 소모품과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군은 그동안 수해 지역뿐 아니라 태풍·산불 등 각종 재난·재해, 대형 사고 등이 발생하면 수색, 피해 복구, 제설 작업 등에 지원을 나가는 것이 당연시돼 왔다. 전문성이나 경력 등과 상관없이 동원되는 분위기다. 군만큼 짧은 시간에 많은 인력을 한꺼번에 투입할 수 있는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무리 군 병력이 대규모로 일시에 이용하기 쉽다고 해도 무조건 동원해도 된다는 생각은 심각한 문제”라며 “군은 전시를 대비해 훈련하는 조직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의 위기 상황은 민간 전문가를 길러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군의 대민 지원 절차는 다음과 같다. 보통 부대가 있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에서 협조 공문을 보내면, 군이 내부적으로 가용 인력과 훈련 상황 등을 검토해 병력과 장비를 지원한다. 대민 지원 여부는 사단장급 이상 지휘관이 군 예규에 따라 회의를 거쳐 결정한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부분 병력을 지원해왔다. 한 퇴역 장성은 “우리 군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을 최우선시하는 문화가 몸에 배어 있다”며 “지휘관 입장에선 병력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지만 국민을 외면했다는 시선을 의식해 대민 지원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엔 병사들이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지만, 요즘은 부대 내도 자유로워서 대민 지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군 내부에서 대민 지원을 성과처럼 여기는 문화도 문제다. 백승주 전 국방부 차관은 “실제 투입했을 때 효과가 얼마나 있느냐를 합리적으로 계산해야 하는데 지휘관 입장에선 출동 자산을 빨리 투입했다는 점을 부각하는 게 사실”이라며 “군 병력을 동원할 때는 엄밀한 기준을 갖춰야 하고, 동원된 뒤 작전 중에는 무엇보다 안전사고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