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4년 뉴월드호텔 살인 사건 직후 경찰에게 검거된 ‘영산파’ 폭력배들의 모습. 이들은 당시 최소 징역 5년에서 최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1994년 12월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뉴월드호텔(현 라마다호텔)에서 서울 강서구의 폭력 조직 ‘영산파’ 조직원들이 광주광역시에서 결혼식 하객으로 온 ‘신양파’ 조직원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졌다. 1991년 강남 팔레스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두 조직이 패싸움을 벌여 영산파 두목이 살해당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일요일 대낮 강남 한복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당시 큰 충격을 불러왔다. 범행에 가담한 영산파 두목과 행동대장, 행동대원 등 10명은 검거돼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5~15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명은 범행 직후 종적을 감췄다.

당시 도주한 2명 중 1명인 서모(55)씨가 최근 살인죄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29년 만에 서씨의 혐의를 확인한 광주지검은 1994년 폭력 조직 간 보복 살인을 저지르고 중국으로 밀항한 혐의를 서씨에게 적용했다. 검찰은 서씨를 지난달 28일 살인죄로 구속 기소한 데 이어 26일 밀항단속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1994년 당시 영산파 행동대원이었던 서씨는 뉴월드호텔 살인 사건의 주범이었다. 신양파 조직원 2명을 살해하고 2명을 다치게 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씨가 당시 회칼로 피해자의 등과 대퇴부 등을 7차례 찔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하마터면 서씨를 살인죄가 아닌 밀항단속법 위반으로만 기소할 뻔했다.

서씨는 범행 후 잠적했고 검찰은 1995년 1월 서씨에 대해 기소 중지 처분을 내렸다. 세월이 흘러 잊히는 듯했던 사건은 중국에서 숨어 지내던 서씨가 지난해 3월 선양의 한국영사관을 찾아가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래픽=양진경

귀국 조치된 서씨는 해경에서 불구속 상태로 조사받으면서 “2016년 9월쯤 중국으로 밀항했다”고 진술했다. 이 진술이 사실이면 서씨를 살인죄로 기소할 수 없다. 당시 형법상 살인죄 공소시효는 15년이고 공범의 재판 진행으로 2년 연장된 것을 감안하면, 이 사건 공소시효는 2011년 끝났기 때문이다.

서씨 진술은 공소시효가 만료되고 나서 중국으로 밀항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때문에 해경은 밀항단속법 위반 혐의만 적용해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서씨 주장을 의심했다. 1996년 이후 서씨의 국내 행적이 전혀 없는 점 등을 수상하게 여긴 것이다. 검찰은 검사와 수사관 등 20여 명으로 전담 수사팀을 꾸리고 30여 곳에 대한 압수 수색과 통화 내역 분석, 계좌 추적을 통해 서씨 행적을 추적했다. 그 결과 2005~2007년 중국에서 서씨를 봤다는 목격자 진술을 확보했고 서씨의 밀항에 관련된 공범들의 교도소 접견 녹취록 등의 증거도 찾아냈다.

결국 검찰은 서씨가 2003년 가을 중국으로 도피한 사실을 확인했다. 범인이 해외로 도피하면 그 기간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서씨의 살인죄 공소시효는 밀항한 2003년 정지돼 7년여가 남게 됐다.

검찰은 지난달 7일 서씨를 검거해 추궁 끝에 자백을 받아냈다. 서씨는 1994년 사건 직후 도주해 숨어 지내다가 2003년 가을 전북 군산에서 선박을 타고 중국으로 밀항했다고 한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현지에서 공범과 여러 차례 만나고 가족까지 중국으로 불러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검찰은 당시 ‘영산파’ 행동대장 정동섭(55)씨를 공개 수배했다. 정씨는 1994년 사건 당시 흉기를 준비하고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도 서씨와 마찬가지로 범행 후 중국으로 밀항했다. 정씨는 2011년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알고 몰래 국내로 들어와 10여 년 동안 사업가 행세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정씨도 시효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여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추적에 나섰으나 최근 다시 도주했다”고 말했다.

이영남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1년 넘게 시민들 틈에서 생활해 온 살인 사건 주범을 엄중한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며 “도주한 공범 정씨를 돕는 조직폭력배들도 엄단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