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훈 전 홈앤쇼핑 대표가 69세의 나이로 31일 별세했다. 고인은 채용 비리를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2018년 대표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이인규 변호사(대검찰청 전 중앙수사부장)의 절친으로, 퇴진 당시 ‘찍어내기’ 논란이 불거졌었다. 4년에 걸친 수사와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이 과정에서 병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1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강 전 대표는 전날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중소기업중앙회 출신인 고인은 2011년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업체 홈앤쇼핑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이듬해 같은 회사 대표로 취임해 두 차례 연임했다. 고인은 대표이사 재임 기간 일명 ‘텐텐 프로모션’ 등 모바일 확대 전략을 통해 연간 1000억원 가까운 순이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7년 들어 강 전 대표를 향한 수사가 시작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된 해였다. 강 전 대표는 이인규 변호사의 부탁을 받고 이 변호사의 처조카를 채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 변호사와 강 전 대표는 고교 동창으로, 이 변호사는 홈앤쇼핑 설립 초기 2년간 사외이사를 맡기도 했다.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 무혐의로 판단했다.
이듬해 초 강 전 대표를 향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강 전 대표와 당시 인사팀장이 2011년과 2013년 홈앤쇼핑 1‧2기 신입사원 공채를 진행하면서 10명을 부정 채용했다는 혐의였다. 그러자 강 전 대표 해임 여부를 결정하는 이사회가 소집됐다. 당시 강 전 대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일정을 안내한 건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직원이었다.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으로, 정부가 해임에 관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명확한 해임 사유가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사퇴하는 일은 없다”며 강경한 입장이었던 강 전 대표는 결국 이사회에 출석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는 곧바로 수리됐다. 강 전 대표의 임기가 2년 넘게 남은 시기였다.
강 전 대표의 채용 비리 혐의 재판은 ‘롤러코스터’처럼 진행됐다. 2020년 1심은 강 전 대표가 임의로 지원자들의 점수를 조작했다며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그는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전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강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사기업은 직원 채용에 대해 광범위한 재량을 갖는다. 점수가 조작돼 순위가 바뀌었다고 하기에는 여러 부분에서 수사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2021년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됐다.
이 과정에서 강 전 대표는 담낭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6월부터는 폐렴 증세를 보여 병원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변호사는 지난 4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강 전 대표 때문에 2017년 미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은 두렵지 않았다.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며 “다만 내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며 출국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강 전 대표는 둘도 없는 친구”라며 “경찰과 검찰은 홈앤쇼핑을 수사해 나와 관련된 비리를 찾으려고 했으나 소득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내가 출국한 뒤에도 강 전 대표를 취업비리로 기소했다”며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됐지만, 강 전 대표는 그때 받은 스트레스로 병을 얻어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강 전 대표의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