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가 중간·기말고사 문제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이 기출 문제를 유료 판매하는 업체들을 찾고 있다. 사진은 한 중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학생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경기 부천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신모(15)양은 지난달 3일부터 사흘간 치러진 학교 기말고사 기출 문제를 구하기 위해 족보 업체 사이트에 7만9000원을 냈다. 족보 업체는 일선 중·고등학교에서 치러진 내신 시험 문제를 학원과 학생을 통해 수집해 유료 이용자들에게 되파는 곳이다. 신양은 “학교에서 기출 문제를 공개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족보 업체를 통해 기출을 구하고 있다”며 “작년 6월부터 지금까지 1년 넘게 족보 업체를 이용하고 있는데 학생으로선 만만치 않은 비용”이라고 했다.

대다수의 중·고등학교가 시험 문제의 저작권과 민원 제기를 이유로 내신 문제 공개를 꺼리면서, 유료 족보 업체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기출 문제를 구해야 중간·기말 시험 대비에 유리하고, 각 학교 교사들이 내는 이른바 ‘내신 킬러 문항’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족보 사이트에 의존하게 된 이유는 수년 전부터 학교 측이 기출 문제를 비공개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대부분의 학교가 기출 문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고 한다. 교사들은 “공개된 기출 문제가 학원가에서 돈벌이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고, 시험 문제를 두고 학부모나 학원의 민원이 폭주할 수 있기 때문에 비공개로 방침을 바꿨다”고 했다. 경기 여주시 한 고등학교 교사 A(55)씨는 “시험 2~3주 전부터 출제 교사의 동의하에 교내 도서실에서 3년 치 기출 문제를 눈으로만 볼 수 있게 하고 있다”며 “출제 오류를 지적하는 민원이 쏟아질까 봐 사진 촬영과 복사 모두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교사는 “작년과 똑같은 사람이 출제하기 때문에 100% 새로운 문제를 출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데, 학원들이 기출 문제를 토대로 예상 문제를 만드니 문제 내는 게 갈수록 힘들어져 기출 문제 공개는 부담”이라고 했다.

학교 측이 기출 문제를 비공개로 전환한 뒤 족보 업체의 매출은 급증했다. 본지가 족보 업체 5곳의 2019~2022년 매출액을 조사해보니, 연간 매출액이 3년 동안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26배까지 늘었다. 한 족보 업체 사이트는 2019년 111억5249만원이었던 매출액이 2022년 217억2681만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또 다른 족보 업체는 2019년 매출액이 2억8152만원이었는데, 2022년에는 75억7000만원으로 26배 넘게 뛰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족보 사이트들이 고가의 회원료를 요구하면서도 오류가 많다는 점이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송모(16)양은 중학생 때부터 시험 기간마다 친구 2명과 과목을 나눠 맡아 각자 과목별 기출을 구매한 뒤 교환하는 식으로 족보를 구한다고 한다. 송양은 “어려운 문제를 대비하려고 한 달에 8만원 가까이 내는데도 실제 기출 문제와 큰 차이가 있었던 적도 많았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유모(16)양도 “고등학교 내신은 챙길 과목과 시험 범위가 커 족보 사이트에서 범위에 맞는 자료를 찾는 것만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족보의 정확도도 낮아서, 수년간 사이트를 이용하다가 최근 그만뒀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학교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공개해야 학생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덜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재곤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시험 문제의 저작권이 교사에게 있는데 사설 업체에서 시험지를 유통하는 건 주객전도”라며 “학교가 공식적으로 시험지를 공개한다면 교사들이 낸 시험 문제가 사교육 시장에서 악용되는 걸 막는 건 물론, 교사가 시험 문제 저작권을 갖는다는 인식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