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초등학교 담임교사에게 “왕의 DNA를 가진 아이” 등의 문구가 들어간 편지를 보내고,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교육부 공무원 A씨가 13일 사과 입장을 밝혔다. A씨는 해당 문구가 치료기관의 자료 중 일부라고 설명했다. A씨가 언급한 사설연구소 측은 “‘왕의 DNA’라는 말은 특별한 아이들에게 덕담 수준으로 쓰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A씨는 이날 사과문에서 “왕의 DNA 등이 적혀 있는 자료는 제가 임의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 치료기관의 자료 중 일부”라며 “교장 선생님과 상담 중 우리 아이의 치료를 위해 노력한 과정을 말씀드렸고, 관련 정보가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새로운 담임선생님께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기관에서 준 자료를 전달한 것이 선생님께는 상처가 되셨을 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A씨가 교사에게 전달한 9가지 요구사항 중에는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해도 다 알아듣는다” “수학 학습 강요하는 건 자제 부탁한다” “극우뇌 아이들의 본성으로 인사하기 싫어하는 건 위축이 풀리는 현상이니 인사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에 가두면 자존감이 심하게 훼손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후 ‘왕의 DNA’ ‘극우뇌’ 등 특이한 용어를 사용하는 한 사설연구소가 주목받았다. 자폐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을 약물 없이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육서비스업체였다.
해당 연구소의 유튜브 강의 영상에는 “극우뇌 유형 아이들은 스스로 ‘황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훈육보다 그런 대접을 해주면 영웅심이 채워져 문제 행동이 교정된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테면 공부하기 싫다는 아이에게 “공부해”라고 말하는 대신 “동궁마마 공부하실 시간이옵니다”라고 하면 더 잘 따른다는 것이다.
◇연구소장 “유명해져 어안이 벙벙”
연구소장 김모씨는 13일 자신의 온라인카페 공지사항을 통해 “단어 하나로 이토록 유명해지다니,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며 “몇 년간 4000명대이던 카페 회원 수가 오늘 1만4000명에 육박한다”고 했다.
김씨는 ‘왕의 DNA’라는 단어에 관해 “제가 어느 집 아이에게 ‘얘가 왕의 DNA를 가졌네요. 잘 키워주세요’라고 했다면 그게 다른 이들의 자녀는 보잘것없는 백성, 평민, 졸개라는 뜻이냐”며 “그럴 리 없다”고 했다.
김씨는 전체의 4%쯤 되는 ‘상당히 특별한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그 아이들의 특징은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하고 ▲잘못해도 사과하지 않고 ▲사회성이 극히 적고 ▲폭력적이고 ▲약속‧규칙을 전혀 지키지 않고 ▲편식 심하고 ▲청개구리 기질 강하고 ▲등교 거부가 심하거나 수업 방해를 잘한다고 했다.
김씨는 “우리는 이런 아이들을 ‘극우뇌’로 분류한다”며 “‘극우뇌’는 나쁜 뇌 타입인 줄 알겠지만, 나쁜 뇌와 좋은 뇌는 따로 있지 않다”고 했다. 뇌 타입에 맞는 방법으로 양육하면 성공한 인물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씨는 “이런 설명 중에 아이가 ‘왕의 DNA’를 가졌다고 부모를 격려하게 된다”고 했다.
다만, 김씨는 ‘왕의 DNA’라는 표현은 부모에게 국한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다른 애들은 신하 노릇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며 “부모님이 손수 사회에 적응하는 아이로 만들라는 뜻”이라고 했다.
김씨는 부모가 미션을 잘 실천하면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던 아이가 또래 눈치도 보고, 잘못한 일에 사과까지는 못 해도 다른 형태로 미안함을 표현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친구가 생기고, 인기가 급상승해 반장이 되기도 하며 학교에도 잘 다니게 된다고 한다. 김씨는 또 “숨어있던 재능이 슬슬 고개를 든다”고 했다.
그는 “’왕의 DNA’라는 말이 ‘아이가 천재 끼가 있네요’ 하는 말과 비슷하게 덕담 수준으로 쓰인 것”이라며 “간곡히 부탁드린다. 양해 바란다”고 했다.
◇전문가들 “ADHD에 가장 효과적인 건 약물치료”
이 같은 ‘무약물 치료’ 주장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계에서는 극단적인 방법이라고 우려한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따르면 ADHD는 1~2주일 동안 약물치료를 해서 낫는 병이 아니라, 상당히 오랜 기간 증상이 유지되거나 성인기까지 증상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 알려진 ADHD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치료다. 약물치료 효과가 부족하거나 부작용이 문제가 된다면 행동치료 등 비약물치료를 동반할 수는 있지만, 비약물치료만으로는 핵심증상에 대한 효과가 미흡하다.
한편 A씨는 지난해 11월 초등학교 3학년인 자녀가 아동학대를 당했다며 담임교사 B씨를 신고했다. B씨는 직위에서 해제됐다가 올해 2월과 5월 경찰과 검찰에서 아동학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A씨는 후임으로 부임한 C교사에게 ‘왕의 DNA’ 등의 문구가 담긴 편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까지 교육부에서 6급 공무원으로 일했던 A씨는 올해 1월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한 뒤 대전교육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전교육청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A씨를 직위 해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