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밀알복지재단 한마음복지관 2층 구강보건실. 푸른색 상의를 입은 중증 자폐성 장애인 이승노(35)씨가 아버지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그가 목에 턱받이를 두르고 의자에 기대 눕자, 치과 의사 유준상(49)씨는 “긴장하지 말고 우리 같이 훈련했던 것처럼 ‘아~’ 입 벌려 보세요”라고 했다. 이씨는 양손을 바들바들 떨었지만,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6분간 진료가 진행됐다. 지난 3월부터 복지관에서 치과 진료를 받아온 이씨는 이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이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수개월에 걸친 유씨와의 ‘적응 훈련’ 덕분이었다.

지난 18일 치과의사 유준상씨가 경기 성남시 자신의 진료실에서 장비를 든 채 웃고 있다. 유씨는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 성남 한마음복지관을 찾아 10년째 장애인 대상 진료 봉사를 해왔다. /오종찬 기자

유씨는 10년 전인 지난 2013년 11월 한마음복지관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일주일에 엿새 동안 자신의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은 이곳 복지관을 찾아 장애인 대상 진료를 진행했다. 유씨는 “피곤하기도 하지만 환자들 입장에서는 한 달을 꼬박 기다리는 것이기에, 일반 진료보다 더 신경이 쓰이고 애정이 간다”고 했다.

복지관 장애인 진료는 일반인 대상 진료와 다르다. 장애인들은 진료를 받기 전 ‘보건실 들어오기, 의자에 앉기, 기구에 적응하기, 칫솔질, 그리고 진료’ 순으로 적응 훈련을 한다. 자폐성 장애인인 이씨도 이 같은 훈련을 수차례 반복했다. 유씨는 “장애인들 대부분 자기 몸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아 오래 걸리더라도 여유를 두고 훈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적응 훈련은 실패를 거듭하며 진행된다. 이씨도 첫 훈련 당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3월 상황이 기록된 진료기록부에는 ‘겁이 많고 진료 협조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난번보다 협조도가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유씨는 “환자가 의자에 앉는 데 성공했더라도, 의자를 뒤로 넘겨 눕히면 다시 벌떡 일어나기도 한다”며 “진료 시간도 1분에서 서서히 늘려가야 한다”고 했다. 유씨는 “아무래도 일반 병원은 환자 수가 복지관보다 9~10배 많고 진료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처음 방문하는 장애인 환자들은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하지만 복지관에서는 조금 느려도 환자가 적응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준다”고 했다. 복지관에서는 스케일링, 충치 치료, 잇몸 치료 등이 주로 진행된다. 유씨는 “장애인 환자들이 진료 환경에 적응해서 꾸준히 관리·점검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유씨는 복지관에 봉사 활동을 갈 때마다 한 번에 8~12명의 환자를 진료한다. 한 명당 진료 시간은 6~10분 정도다. 유씨는 “환자들이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진료 시간도 짧을 수밖에 없다”며 “진료가 길어지면 이들이 ‘돌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진료를 견디지 못한 장애인들이 주변에 있는 물건을 잡고 휘두르거나, 구토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유씨는 한마음복지관에서 봉사하기 전부터 의료 봉사에 관심이 많았다. 연세대 치과 대학 본과 재학 시절 봉사 동아리에서 장애인, 탈북민 등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진료 봉사를 했다. 페이 닥터 시절에는 매주 복지관을 찾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애인들을 진료했다고 한다. 그는 “장애인 진료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에는 그날 바로 치료를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여유 없이 진료했었다”며 “10년 넘게 진료하면서 적응기를 두고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유씨는 더 많은 동료와 ‘봉사의 맛’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봉사 활동을 가자고 많이 이야기를 한다”며 “보통은 봉사를 부담스러워하지만, 한번 다녀오면 모두 다음 봉사 활동을 기다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