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14억원짜리 용역을 발주하면서 ‘고향 친구’가 운영하는 업체에 평가 기준 등 비공개 입찰 정보를 흘려주고 괌, 제주도 골프 여행 접대 등 213만원 상당의 향응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입찰에는 3개 업체가 지원했지만 결국 이 공무원의 고향 친구가 운영하는 업체가 낙찰받았다.

강원도의 한 전직 시장은 2020년 관광지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의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준 사실이 드러났다. 경관법에 따르면 3만㎡ 이상 대형 사업을 추진하려면 도(道)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 시장은 심의가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심의 신청을 취소한 뒤 해당 부지의 개별 사업을 건건이 시(市)가 인허가 해주는 방식으로 추진했다. 이런 방법으로 이 지역 개발 사업은 2년 만인 지난해 완공됐다.

행정안전부는 4일 이 같은 지역 토착 비리들을 적발한 ‘지방자치단체 공직 부패 특별감찰’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3~6월 100일간 전국 16개 광역시·도와 함께 특별감찰을 벌인 결과다. 작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공직·노조·기업 부패를 ‘3대 부패’로 규정해 엄정한 법 집행에 나서겠다고 밝힌 이후 추진됐다.

감찰 결과 지역의 토착 비리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총 290건이 적발됐다. 이와 관련해 행안부는 해당 지자체에 공무원 331명의 징계를 요구했다. 이 중 파면·해임·강등·정직에 해당하는 중징계 대상자만 43명이었다. 사안이 중대한 11명은 경찰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권한을 남용해 제 잇속을 챙긴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북의 한 시청 국장은 지난해 면사무소 건설 담당 직원에게 20여 차례 전화하는 등 압박해 자기 땅 옆의 농로(農路)를 포장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했다. 시 예산으로 자기 땅값을 올린 셈이다. 그러나 농로 포장은 인근 토지 소유주의 동의를 받지 못해 결국 실패했다. 이 국장은 동의를 받지 못한 토지를 빙 둘러 새로운 농로를 내려다가 시가 소유한 임야를 훼손하기도 했다. 그는 산지관리법 위반으로 입건돼 벌금형까지 받았다.

그래픽=김성규

채용 부정도 여전했다. 충남의 한 지자체 팀장은 산하 기관의 직원 채용 과정에 개입해 자격 미달인 지원자를 합격시켰다. 이 지원자는 경력 요건을 채우지 못했는데도 원서를 냈고,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 면접에서 4명 중 2등에 오르자 이 팀장은 면접위원이 매긴 1등의 점수를 깎아내려 합격자를 바꿨다. 결국 1등이 탈락하고 2등인 지원자가 채용됐다. 이 팀장은 “해당 지원자를 개인적으로 모르고, 면접 점수도 수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행안부는 상관의 지시나 대가 관계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그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한 광역시의 구청 직원은 구청 컴퓨터 모니터에 장착할 보안 필름(모니터 화면이 잘 보이지 않도록 하는 특수 필름) 18개(1개당 10만원)를 구입하면서 150만원을 횡령했다가 들통났다. 이 직원은 18개를 구입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3개만 구입해 장착하고 15개만큼은 업체로부터 돈을 돌려받았다고 한다. 이 직원은 복합기 토너 구입 비용도 비슷한 수법으로 횡령한 것으로 의심돼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또 다른 광역시의 건설과 직원 6명은 업무상 출장을 갈 때마다 관련 시공업체 직원들을 불러 숙박비와 차량 비용을 대신 내게 한 사실이 적발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 과에서는 관행처럼 시공사 차량을 불러 단체 출장을 다니곤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행안부는 이번 감찰 결과를 전국 지자체에 전파하고 홈페이지에도 공개했다. 이건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지방 공무원의 윤리 수준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이라며 “윤리 교육 강화 등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