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8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강연하고 있는 박범계 당시 법무장관의 모습. 이 강연은 '초청' 형식이었는데 관련된 부대 비용은 초청기관이 아닌 전부 법무부가 댄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문재인 정부 법무장관이던 2021년, 6박8일짜리 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기념품 구입비 400여만원 등 총 1억713만원을 쓰고도 ‘6800여만원’으로 축소 공개했다는 논란이 이는 가운데, 박 의원의 당시 ‘미국 대학 초청’이라던 현지 대학 강연 출강에도 국비를 지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연 내용이란 ‘남북 법률가들이 교류하면 비핵화의 자산이 될 것’이란 것이었다.

법무부가 2021년 11월 19일 공개한 ‘장관 동정 알림’ 자료와 ‘미국 출장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박 장관은 그달 18일(현지 시각) 조지워싱턴대학교 엘리엇스쿨(국제관계대학) 한국학연구소의 초청으로 약 1시간 동안 강연을 했다. 강연 제목은 ‘국제정치의 강 위에 법률의 징검다리를 놓고 싶다’, 부제는 ‘남북관계의 법제화, 한반도 평화정착의 길’이었다.

법무부 수장이 ‘남북관계’와 ‘평화’를 주제로 발언하는 이유에 대해 박 의원은 강연 초반 많은 시간을 들여 설명했다. 그는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왜 통일부나 외교부가 아닌 법무장관이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이 여럿 있을 것”이라며 “통일문제를 외교 안보 문제로 이해하는 분이 많지만, 남과 북이 평화를 추구하고 이뤄가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모든 과정이 법률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유튜브 법무부tv

박 의원은 “문자 그대로 통일은, 둘로 나뉘어 있는 법과 제도의 통합을 논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통일의 전 과정은 법제화의 과정이고 법치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남북통일을 준비하며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공식적인 추진 방안은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1단계 교류협력, 2단계 남북연합, 3단계 통일완성이라는 단계로 구성돼 있다. 법무부는 각 단계에 필요한 법제적 준비를 담당하는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박 의원은 강연에서 남북 법률가들이 만나는 게 ‘비핵화’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폈다.

“남북의 법률가들은 서로 다른 체제 속에 살지만 법률의 언어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남북의 법률가가 만나 교류 협력을 통해서 쌓아가는 신뢰와 그 신뢰를 담은 법제는 비핵화를 위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남북 주민 간 가족관계 및 상속 등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의제 삼아 남북 법률가 대회 같은 형식의 만남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고 했다.

당시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한창이었다. 국내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2000명 이상 나오는 상황이었고, 북한은 코로나를 막는다며 국경을 사실상 폐쇄한 상태였다.

/법무부

이 강연 보고서에서, 법무부는 강연 ‘성과’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문제가 국제정치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법치의 영역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법무부의 역할과 의지 표명.”

“대한민국이 법률의 영역에서 견인하는 통일상을 강화하고,조지워싱턴대학교 엘리엇스쿨과 한국학연구소와의 네트워크 구축.”

박 의원 강연은 외형상 ‘초청’ 형식이었지만, 관련 부대 비용은 초청자가 아닌 법무부가 전액 댄 것으로도 나타났다. 법무부는 미국 출장 결과 보고서에서 이 강연을 포함해 박 의원의 방미 일정에 든 총 여비를 밝혀뒀는데, 출장 여비 중 ‘초청기관 부담’ 항목에는 ‘해당 없음’이라고 적어넣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초청기관이 강연료나 여비 등 일부라도 부담하는 경우 ‘일부 부담’으로 기재해야 한다. 정치인 출신 장관의 ‘1시간짜리 미 명문대 강연’이라는 모습을 남기기 위해 나랏돈을 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법무부’는 공무원 해외 출장 정보 사이트인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btis.mpm.go.kr)에 박 전 장관의 미국 출장 수행 인원과 경비를 축소 기재했다. 수행 인원은 실제 인원 11명보다 6명 적은 ‘5명’이라고, 출장 경비 총액은 실제 사용액 1억713만원보다 3873만원 줄어든 ‘6840만원’으로 공개해놨다

형법 227조는 공무원이 그 직무에 관한 문서를 실제 사용할 목적으로 허위 작성하거나 고친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법무부는 이와 관련 “전임 장관의 출장비 액수 축소에 대해서는 경위파악 중이고, 필요한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달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동훈(왼쪽) 법무장관이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SBS

박 의원의 법무장관 시절 미국 출장비 내역이 공개된 것은 지난 9월 국회에서 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한동훈 법무장관을 상대로 한 질문에서 비롯됐다. 김 의원은 지난달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 장관의 ‘미국 출장비 과다 지출 의혹’이 있다면서, 법무부가 관련 내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미국 출장비 관련) 밥값에 대해서 물어본다. 한 장관이 밥값에 대해서 말씀을 못해서 피해가는 것 아닌가”라며 “공개하실 생각이신가?”라고 물었다. 한 장관은 이에 대해 “저는 출장 갈 때 지난 정부 장관들보다 수행원도 줄였고 액수도 60%대에 맞췄다”라고 답했다.

김 의원은 “또, 또, 지난 정부”라고 말을 끊었고, 한 장관은 “그럼 지난 정부가 아니면 이승만 정부와 비교를 합니까”라고 맞받았다. 김 의원은 “(출장비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법무부 예규에도 어긋난다”고 재차 비판했다.

한 장관은 “공개하겠다. 대신에 지난 정부 법무부 다른 장관들도 같이 공개 청구해 달라”고 했다. 김 의원은 “좋다. 한 장관과 지난 정부 장관들 것까지 같이 공개해달라”고 했다. 그 뒤 실제로 법무부는 한 장관의 지난해 미국 출장비 내역과 관련한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