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이대부고 초록빛 잔디가 깔린 야외운동장.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부모님들과 나란히 선 채 준비 운동에 한창이었다. 사회자가 ‘하나둘셋넷’ 구호를 선창하자 아이들은 ‘둘둘셋넷’ 씩씩하게 구호를 따라 외치며 무릎을 굽혔다 펴고 두팔을 하늘 위로 번쩍 들기도 했다. 형광 연두색과 형광 노랑색 조끼를 입은 아이들이 운동장 양옆에 설치된 천막에 일렬로 나란히 섰고, 이내 게임이 시작됐다. 운동장에 널려있는 자기 팀의 고깔콘을 더 많이 세워야 승리. 사회자가 “출발!”을 외치자 형광 조끼를 입은 서른명 가량의 아이들이 좌우 양옆에서 총알처럼 튀어나와 고깔콘을 향해 돌진했다. 머리를 흩날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과 함께 사뭇 집중하는 기색이 띄었다. 이후 부모님들이 게임을 할 차례가 되자 아이들은 두 팔을 들고 방방 뛰며 응원하기도 했다.

토요일인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이대부고 야외 운동장에서 열린 홈커밍데이 행사에 참석한 아이들이 게임을 하며 질주하는 모습. 임신주수를 채우지 못하고 태어나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입원했던 '이른둥이'들은 이날 오후 건강하고 활기차게 의료진, 가족들과 게임을 즐겼다./세브란스

이날 임신주수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 아이들과 가족들을 초청하는 홈커밍 행사가 세브란스 어린이 병원 주최로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른둥이들은 2012년~2015년생으로 여느 초등학생과 다를 바 없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부모님들과 의료진들도 아이들과 어우러져 행사 내내 운동장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활기찬 모습의 이른둥이들은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 태블릿pc만큼이나 가볍고 작았다. 만삭아들은 40주를 채워 평균 3.5kg으로 태어나지만 미숙아들은 주수를 채우지 못하고 평균 몸무게도 한참 가볍게 태어난다. 태어나서부터 호흡과 배변활동을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길게는 수개월 동안 의료진의 돌봄과 치료를 받는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초등학교 2학년 쌍둥이 두 형제의 엄마인 차윤숙(45)씨는 26주 4일차 되던 날 두 아이를 낳았다. 시험관으로 임신한 쌍둥이들은 위급상황 수술로 각각 860g, 900g으로 태어났고, 이후 3개월을 넘게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치료 받아야 했다. 차씨는 “아이들이 태어난 뒤부터 늘 기쁨이었다”고 한다. 물론 치료실을 졸업하고 난 뒤에도 심장과 눈이 좋지 않아 수술을 받아야 했고, 3~4살 때까지는 관찰 추적을 위해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녀야 했다. 차씨는 “결혼하고 8년 만에 생긴 아이들이라 아빠가 엄청 예뻐한다”면서 “이제는 또래 친구들과 차이 없이 건강하게 뛰노는 모습에 대견하다”고 했다.

김유림(44)씨는 35세 되던 나이에 다은이를 낳았다. 680g으로 태어난 아이는 99일 동안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있었다. 김씨는 “여자 동료들이 많은 직장에 다니면서 동료들이 출산 후에도 거뜬히 복귀하는 모습을 보며 막연히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위급상황에서 이른둥이를 낳을 줄 몰랐다”며 “급속도로 모든 게 진행됐고 혼이 나갔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김씨는 출산 후 3~4일 입원하는 동안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울기만 하는 힘든 시간도 통과했다고 한다. “다행히 2kg 되고 스스로 먹을 수 있게 된 시점에 퇴원했고, 여태껏 잘 자라주었다”고 했다.

의료진들에게도 건강하게 잘 자라준 이른둥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 행사의 의미는 특별했다. 미숙아들은 자가호흡이 어려워 인공호흡기를 달고, 대변이 장을 막는 경우가 많아 세심하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 머리 안 혈관도 매우 약해서 만에 하나 터지면 평생 장애가 생길 위험이 있다. 출혈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돌보는 등 합병증 없이 무사히 퇴원시키는 것이 의료진의 임무다. 미숙아들을 스스로 생리작용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수주 동안 ‘키우는 셈’이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근무하는 한정호 신생아과 조교수는 “이 과정에서 40주를 채워 퇴원해도 다른 아기들보다 보통 작고 발달도 되게 느린 아기들이 많아, 발달 2~3년 이상 계속 외래로 추적관찰 한다“며 “건강한 모습으로 여기서 뛰어다니는 건강한 모습을 보면 부모와 같은 맘을 느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