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전문업체를 사칭한 가짜 리딩방을 운영하며 “당일 500% 수익을 보장한다”고 피해자 253명을 속여 151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 금액은 1인당 최대 4억3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리딩방’은 메신저 대화방을 통해 종목을 추천해주고 주식투자를 자문해준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아 수수료를 받는 식의 불법 자문 방식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리딩방을 운영한 재테크 투자사기 6개 연합 조직 총책급 6명 등 49명을 검거하고, 이 중 24명을 구속했다고 7일 밝혔다. 이들은 작년 3월부터 지난달까지 장기간에 걸쳐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서 조직적으로 범행을 공모한 후 수익을 나눈 것으로 조사됐다. 각각 ‘피해자 유인 조직’ ‘기망 조직’ ‘법인통장 공급 조직’ ‘자금세탁 조직’ ‘인출 조직’ 등 5개 조직으로 역할을 나눴다. 이들은 서로 신원도 얼굴도 모른 채 범죄를 모의했다.
텔레그램을 통해 이른바 ‘범죄 생태계’를 구축한 이들은 2020년 9월부터 2022년 4월까지 필리핀, 영국 등 해외에서 가짜 가상자산 투자 사이트를 운영하며 투자자문업체를 사칭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했다.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정교하게 이뤄졌다.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팔아 넘기는 이들에게서 해외 운영 조직원 6명이 불특정 다수의 개인정보를 구매하면, 피해자 유인 조직원 6명이 “당일에만 500%의 수익을 볼 수 있다”며 투자리딩방으로 유인했다. 리딩방 안에서는 이른바 ‘총판’으로 불리는 일당이 전문가와 투자자 행세를 동시에 하며 ‘1인 다역’으로 바람잡이를 했다.
경찰에 따르면 ‘총판’으로 불리는 이들은 리딩방에서 피해자에게 투자자인 양 “따라하기만 했는데 300만원을 넣고 370만원을 환급 받았다” “사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며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그러는 동시에 “지난 한 주 동안 21명이 하루에 300%가 넘는 수익을 봤다”며 전문가 행세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현혹된 피해자가 개인 대화방에 초대되면, 이들이 가짜 가상자산 사이트에 가입하도록 유도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이트에 접속해보면 ‘원칙을 지키며 신뢰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겠다’는 문구까지 있을 정도로 정교하고 교묘하게 만들어져 있었다”며 “30여 차례 사이트 이름을 바꿔 가며 범행을 지속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보험설계사, 금융업 종사자는 물론 교사, 간호사, 미용사, 직업군인까지 피해자의 직업도 다양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피해자가 가짜 사이트에 가입하면 처음에는 10만원 단위의 소액 투자를 요구한 후 일부 환급을 해주고, 이후에는 각종 중요 프로젝트가 있다는 명목으로 투자 금액을 계속 끌어올리게 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투자금을 출금하려고 하면 수수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거나, 수익이 너무 커 금융감독원 조사가 필요하니 이를 피하려면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식이다.
이러한 각본대로 움직인 조직원은 모두 대화방을 나갔고, 피해자도 사이트에서 강제 탈퇴되면서 피해를 보전할 수 없게 된다. 이 전략에 속은 피해자는 1인당 200만원에서 많게는 4억3000만원에 이르는 피해를 봤다고 한다. 피해자들에게 가로챈 돈은 ‘법인통장 공급 조직’이 만든 30개의 유령법인 계좌에 입금됐다. 이후 ‘자금세탁 조직’이 필리핀 현지 카지노 환전상을 통해 환치기를 하거나 상품권 매매를 가장해 자금을 세탁했다. 이렇게 세탁된 돈은 마지막으로 ‘인출 조직’에 의해 총책이 지정한 장소로 전달됐다.
경찰은 해외 운영조직 총책 A씨 등 핵심 피의자 9명에 대해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내렸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랜섬웨어, 해킹 조직의 범행 모의 장소였던 텔레그램이 비대면과 익명성을 이유로 최근 민생범죄 투자사기에도 활용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고수익 보장을 미끼로 가상자산, 주식, 선물 투자를 유도하는 ‘투자 리딩방’은 사기가 많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