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의 앵무새를 습득한 뒤 반환을 요구받고도 그대로 날려보낸 60대 남성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박민 판사는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대해 지난달 19일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11월 15일 서울 서초구에서 습득한 400만원짜리 청금강 앵무새를 자신의 업장에 보관하다 경찰로부터 반환 요구를 받고도 온실 문을 열어 놔 앵무새가 날아가게 한 혐의를 받았다.
이 앵무새의 사연은 지난 7월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도 다뤄졌다. 앵무새 주인 권호경씨는 “실종된 앵무새 ‘아리’는 내 목숨을 구해준 것과 다름없다”며 힘들어 했다.
권씨에 따르면, 우울증을 심하게 앓던 그는 5년 전 지인의 권유로 아리를 키우게 됐다. 아리는 허가 없이는 사육할 수 없는 멸종위기종인 청금강 앵무새였다. 5살 지능에 활발한 성격이던 아리는 우울증에 빠져있던 권씨를 세상 밖으로 꺼내줬다. 권씨는 ‘복덩이’ 아리를 만난 후 다른 앵무새들도 자식처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권씨는 언젠가부터 앵무새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평균 수명이 70년인 앵무새들이 집에만 묶여서 사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이에 권씨는 2년간 자유비행 훈련을 시켰고, 앵무새들도 이에 적응했다. 아리와 모모, 호리라는 이름의 앵무새 3마리는 항상 함께 날아다니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13일 문제가 발생했다. 까마귀 떼에게 쫓긴 앵무새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모모는 다음날 저녁 스스로 집에 찾아왔고, 호리는 14일 대모산 등산객에게 발견되어 권씨에게 돌아왔다. 등산객들은 앵무새 발에 착용된 반지에 적힌 권씨의 연락처를 통해 주인을 찾아줬다.
하지만, 아리의 행방만은 알 수 없었다. 권씨는 아리를 찾기 위해 유기동물 실종사이트에 글을 올렸고, ‘누군가 포털사이트에 글을 올렸으니 확인해 보라’는 댓글이 달렸다. 아리와 똑같이 생긴 새의 사진을 올리고는 “이 새 품종 아는 분 있으세요?”라고 묻는 글이었다. 권씨는 20번 이상 ‘사례하겠다’ ‘연락 꼭 부탁드린다’는 댓글을 남겼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결국 권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IP추적을 통해 A씨를 찾았지만 일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당시 연락했던 경찰은 “(A씨가) 내가 앵무새를 갖고 있는 건 맞는데, 왜 돌려줘야 하느냐는 식으로 나왔다”며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와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권씨는 품종을 확인한 후 앵무새의 비싼 몸값을 알게 된 A씨가 어딘가에 판매한 것 같다고 의심했다. 청금강 앵무새는 수백만원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렇지 않고서야 아리를 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권씨가 A씨를 직접 찾아갔지만, 아리는 돌려받을 수 없었다. A씨는 앵무새가 이미 날아가 버렸다고 했다.
A씨의 아내는 “우리가 있으면 진작에 드렸지, 새 그까짓 것”이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A씨는 “어느 날 새가 가슴으로 떨어졌다”며 “아내는 날려 보내자고 했지만, 추운 날씨가 걱정돼 먹을 것을 챙겨주며 돌봤다”고 했다. 그러나 새장 안에 갇힌 앵무새의 울음소리가 너무 시끄러웠고, 사무실 안에 머물게 했다고 한다. 그렇게 보름 정도 있던 앵무새는 어느새 사라졌다고 했다.
A씨 부부는 “발목에 반지가 보이기는 했는데, 앵무새를 잡을 수가 없으니 연락처를 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에는 아들이 글을 올렸으며 그 이후에는 댓글을 확인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경찰서에서 연락왔을 때에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수신 거부를 해놨다는 게 A씨 부부의 주장이었다.
박 판사는 이에 대해 “앵무새를 반환하지 않은 채 불상지로 날아가게 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재산상 손해는 물론 심각한 심적 고통까지 안겨줬다”고 판단했다. 다만, 동종 범행이나 벌금형을 초과하는 범죄전력이 없는 점을 고려해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권씨는 여전히 아리를 찾는다고 했다. 그는 “아이의 생사가 확인되기 전까지 끝까지 찾을 것”이라며 “제가 그 아이를 손에서 놓는다면 부모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