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석 서울대 공대 학장이 “한국은 과학기술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최근 수능에서 심화 수학을 배제하고 R&D 예산을 깎는 등 공대(工大)를 위기로 몰아넣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대 학장실에서 본지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는 홍 학장. /남강호 기자

서울대 공대 홍유석(58) 학장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공대를 무너트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홍 학장은 지난 4일 본지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의 과학교육 정책에 대해 “‘첨단 공학 분야는 미래 먹거리’라고 하면서 관련 정책은 따로 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홍 학장은 이날 인터뷰가 이뤄진 3시간 동안 최근 정부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공대에 위기를 초래하는 대표 정책으로 심화 수학 수능 배제, R&D 예산 삭감, 무(無)전공 대학 입학 확대를 꼽았다. 무전공 입학은 대학 정원의 25% 이상을 전공 구분 없이 1학년으로 입학시킨 뒤, 2학년이 될 때 전공을 선택하게 하는 정책이다.

그는 미적분 등 심화 수학 수능 배제에 대해선 “전 고등학생을 문과생으로 만들 작정이냐”고 했다. R&D 예산 삭감은 “과학기술로 먹고사는 선진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아래는 홍 학장과의 일문일답.

-왜 목소리를 내게 됐나?

“작년 8월 R&D 예산이 5조2000억원 삭감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공계는 비상이었다. 설마 했지만 작년 12월 4조6000억원이 감축된 R&D 최종 예산안이 확정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교육부는 심화 수학 배제와 무전공 입학 확대 정책까지 내놨다. 제각기 다른 취지에서 나온 정책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모여 첨단 공학 인재 양성에 어떤 부정적 시너지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지적하지 않아 내가 목소리를 내게 됐다.”

그래픽=양진경

수학은 모든 공학의 기초

-심화 수학 수능 배제는 무엇이 문제인가.

“교육부에 따르면 심화 수학이 수능에서 배제됐고 과학탐구도 이젠 고1 수준 통합 과학만 수능을 치르게 됐다. 한마디로 ‘문과 수능’이 된 셈이다. 고등학교 교육은 기본적으로 수능 제도의 영향을 받기에 앞으로 깊이 있는 수학·과학을 가르치는 고등학교는 줄어들 것이다. 이러면 과학고, 영재고 등에서 고급 수학·과학을 공부한 학생들과 그러지 못한 학생들 간 양극화도 심해진다. 정부가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인공지능(AI)이나 양자(量子) 등 분야는 심화 수학이 기본이 되지 않으면 공부할 수 없는 학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대학이 필요한 인재를 뽑을 수 있도록 수능 선택 과목을 오히려 늘려야 한다. 수학과 과학은 모든 공학의 기초다. 정부는 2028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선택 과목을 없앤다고 했는데, 일부 과목은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심화 수학, 물리학, 화학을 수능에서 선택 과목으로 따로 만든 뒤 각 대학이나 전공에서 필요한 과목을 자유롭게 대학 입시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공학계에 R&D 예산 삭감 여파가 심각한가.

“지금 미래 산업은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AI, 양자, 기후 공학 등 새로운 산업이 빠른 속도로 떠오르고 있다. 단적으로 한국을 먹여 살려온 반도체 산업마저 우리가 상대적으로 약한 분야인 ‘시스템 반도체’로 주류가 넘어가면서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번 주춤하는 순간 산업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타이밍에 4조60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R&D 예산이 삭감됐다. R&D 예산은 미래 투자다. 당장도 문제지만 향후 10~20년 뒤엔 학계와 산업계 모두 더욱 심각한 위기를 겪을 것이다. R&D 예산에 비효율성, 나눠 먹기 등 문제가 있었다면 문제점을 찾아 핀셋 조정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홍유석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이 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정부의 R&D 감축, 심화수학 폐지, 무전공 확대 등과 관련 공과대학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대학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연구비가 80% 깎였다는 교수도 있다. 연구비 감소는 연구실별 대학원생 선발 문제로 연결된다. 먹여 살려준다는 보장도 없는데 대학원생을 어떻게 뽑나. 후학 세대와의 단절, 연구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얼마 전 학생들이 찾아와 ‘앞으로 연구 못 하는 거냐’고 걱정하더라. 서울대 공대 차원에서도 어떻게든 가용 재원을 끌어모아 당장 올해 연구는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1~2년은 버티지만 이른 시일 안에 예산 복원이 안 되면 우리도 무너진다. 이대로 가면 이공계 전반에 부정적 시그널을 주게 된다.”

-부정적 시그널이란 무엇인가.

“국가가 공학도를 천대한다는 인식이 이공계 꿈나무 사이에 더 퍼질 것이다. 지금도 의대 쏠림 현상 때문에 최상위권 이공계생들은 대부분 의대로 빠진다. 그런 와중에 정부는 의대 정원을 확대했다. 물론 지방 의료, 필수 의료 인력이 부족하니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향성은 맞는다. 시간이 오래 지나 의대 졸업생이 훨씬 많아진다면 시장 논리에 따라 의사 자격증의 가치도 떨어질 것이고 쏠림 현상도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은 정원이 늘어나니 의대 쏠림은 더 심해진다. 의대 정원을 늘릴 것이라면 R&D 예산 복원은 물론 첨단 공학 인력에 대한 막강한 보호책이 나와야 한다.”

-공대에 ‘특혜’라도 줘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 수준으로 성장한 배경엔 과학기술이 있었다. 1980년대엔 학력고사 수석이 전자공학과, 물리학과에 갔다. 그때부터 과학기술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1997년 금융 위기를 겪으며 이공계 위기가 시작됐다. 생존 기로에 놓인 기업들에 당장 돈이 되지 않는 R&D 인력은 구조 조정 1순위 대상이었다. 나도 당시 기업에 몸담았지만 주위 많은 동료가 일자리를 잃었다. 그 트라우마를 안은 공학도들이 자녀들에게 공학을 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사회가 첨단 공학 인재를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이공계생들에게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통해 병역 특례를 준 것처럼 첨단 공학 인력을 보호할 획기적 정책이 나와야 한다. 특혜 지적이 나오겠지만 첨단 공학 인력을 보호 못 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줄어든 R&D 예산 복원해야

-무전공 입학 확대와 공학 위축은 무슨 상관인가.

“학과 간 벽을 허물고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전공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공학은 특수 분야다. 수학, 과학은 물론, 컴퓨팅이나 AI까지 본격 전공에 돌입하기 전인 1학년 때부터 내실을 다져야 할 것이 많다. 그 중요한 1년을 무전공 학생들은 교양을 듣고 다양한 전공을 탐색하며 보낸다. 그 와중에 고교 시절 심화 수학·심화 과학조차 배우지 않아 공학에 대한 심리 장벽은 매우 높을 것이다. 또 무전공생을 뽑는다는 건 각 단과대가 어느 정도 정원을 내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전공으로 내준 정원 중 진입 장벽이 높은 공대로 돌아오는 정원은 극소수일 것이다. 공학 인재가 유출된다는 뜻이다.”

-공대엔 무전공이 도입돼서는 안 된다는 건가?

“무전공은 일종의 전문 교양 교육이라 봐야 한다. 그러나 첨단 공학 인재는 전문화 교육을 통해 길러진다. 무전공을 통한 융합 교육 달성과 첨단 인력 양성은 서로 상충하는 면이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는데 국가의 미래를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지금 공대 재학생들이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학생들의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다. 지금 석·박사생 중엔 과거 의대에 붙었지만 안 가고 공대에 온 이도 많다. 그 친구들이 ‘왜 과거에 의대를 안 갔지’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자 신념을 갖고 치열하게 살아온 이들이 선택에 후회하고 막막해한다. 자격증이 있는 의사만큼은 아니겠지만 첨단 공학을 해도 최소한의 하방이 보장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결국 대한민국 미래의 한 축을 책임져야 할 이들 아닌가? 언제까지 광야에 방치할 셈인가. 그대로 두기엔 이들은 너무 외롭다.”

☞홍유석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

서울대 공과대학 홍유석(58) 학장은 산업공학과 출신으로, 학계에 들어오기 전 대기업에서 12년간 일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미 퍼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90년부터 대우자동차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2002년 미국 털리도대에서 기계산업제조공학과 조교수로 교단에 처음 섰다. 2003년 모교인 서울대로 돌아온 그는 20년 동안 산업공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15년 신양공학학술상, 2022년 정헌학술대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