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김미나씨 부부 가족의 모습.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1억5120만원. 전라남도 강진에서 지난해 4월 세 쌍둥이를 낳은 이동훈(42)·김미나(42)씨 부부가 강진군에서 받는 금액이다. 첫째 지효(4)를 포함해 네 명의 자녀를 키우는 이들은 지난해 4월부터 7년간 세 쌍둥이 몫으로 월 180만원의 육아수당을 받는다. 강진군이 2022년 10월부터 2022년 1월 이후 출생자 1명당 5040만원을 육아수당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지난 1월 25일 방문한 이씨 부부의 집. 네 명의 아이들이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방 세 개인 집에서 안방을 제외한 두 방과 거실이 모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거실 바닥에 폭신하게 깔린 매트 위를 자유롭게 기어다니던 세 쌍둥이는 기자에게 안아달라고 두 손을 뻗었다. 부부는 첫째를 낳은 후, 아이가 혼자 외롭지 않게 둘째를 가지려 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시험관 시술을 했다고 말했다.

김미나씨는 “병원에서 세 쌍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나이가 있어서 세 쌍둥이를 낳을 수 있을지, 낳은 뒤에는 어떻게 키울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첫째 키울 때는 분유 한 통이면 일주일 먹였는데 지금 세 쌍둥이는 하루 반이면 한 통을 다 먹는다. 기저귀도 한 통이면 하루 반 만에 동난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네 명 식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육아수당이 많이 나와서 다행이다.”

강진군은 2021년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89곳의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됐다. 강진군에 따르면 강진군 인구는 1965년 12만7878명으로 최고점을 찍고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3년 11월 기준 3만3169명이 됐다. 이 중 노인 인구는 1만2257명으로 전체의 37%를 차지한다. 강진군청 군민행복과 김지혜 아동친화팀장은 “특히 면 단위로 가면 어르신만 계시고 아이 구경하기 힘들다”며 “‘아이 울음소리가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했다.

강진군의 소멸 위기감은 파격적인 육아수당 정책으로 이어졌다. 아이 1명당 월 60만원씩 7년간 모두 5040만원을 지원하는 것은 지자체 차원에서 전국 최고 수준이다. 강진군은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의 70%는 지원해주자’고 해서 월 60만원이라는 금액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도 보육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인 자녀의 한 달 평균 양육비는 86만3000원이다.

김태양(28)·김세희(23)씨 부부는 다른 지역에서 강진군으로 전입한 사례다. 광주에서 지내던 부부는 지난해 김태양씨가 해남으로 일자리를 옮기면서 강진군으로 이사했다. 이들은 전입신고를 하는 날 매월 60만원의 육아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내받고 둘째를 임신하기로 결심했다. “강진군으로 전입 신고할 때 5040만원을 준다고 해서 바로 둘째를 가졌다. 둘째는 오는 3월 태어날 예정이다.”

이동훈·김미나씨 부부의 세쌍둥이 아이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전입한 지 6개월 지난 아이도 5000만원

이들 부부의 첫째인 태희(2)는 다른 지역에서 2022년 3월에 태어났지만, 역시 육아수당 지원 대상이다. 전입한 지 6개월만 지나면 지원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이번 1월부터 육아수당을 받게 됐다. 김씨는 “강진군으로 오기 전에는 (아동수당으로) 많아야 15만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15만원과 60만원의 차이가 있냐고 묻자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엄청이요, 엄청”이라고 했다. 오는 3월 둘째가 태어나면 부부가 받는 육아수당은 월 120만원으로 늘어난다.

“원래 오늘로 알고 있었는데 어제(1월 24일) 첫 육아수당이 들어왔다. 거기선 현금으로 받고, 여기선 모바일강진사랑상품권(지역화폐)으로 받는데도 차이가 크다. 15만원이면 기저귀와 물티슈 한 번 사면 끝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사비는 무조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강진군에서 월 60만원을 주니까 부모에게 아이를 대신 키워달라고 하는 느낌이다. 덕분에 아이를 키우는 부담을 덜었다.”

5040만원의 육아수당에 이끌려 다른 지역에서 강진으로 넘어온 가정은 이들만이 아니다. 강진군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후 2023년 12월 말까지 203명이 육아수당을 받았는데 이 중 40명 정도가 강진군으로 전입한 경우다. 혜택을 받는 사람 중 약 20% 정도가 다른 지역에서 강진군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이다. 강진군청 김지혜 팀장은 “육아수당 관련해 문의가 많이 오는데 특히 순환직 공무원의 경우 전입을 많이 희망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저출산 대응을 위해 정부는 지난 15년간 2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했지만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동안의 정책이 출산율 제고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반면 강진군의 사례는 파격적인 현금성 지원이 출산율 제고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육아수당 정책 도입 이후 강진군의 출생아 수가 유의미하게 늘었기 때문이다.

강진군에 따르면 2023년 출생아 수는 154명으로, 2022년 93명에 비해 65.6% 증가했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살펴보면 같은 기간 전남지역 출생아 수는 8027명에서 7933명으로 94명 감소했으며, 전국 출생아 수는 25만4628명에서 23만5039명으로 1만9589명 줄었다. 강진군은 “지난 1월 5일까지 집계된 2024년 출생아 수가 7명이며 1월 말까지 14명이 더 태어날 예정”이라며 “전국 유일의 월 60만원 육아수당과 산후조리비 지원 등 과감하고 다양한 임신·출산 친화 정책의 효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현금성 지원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평가모니터링센터장은 “정부가 자원을 모아서 많은 돈을 장기간 주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며 ‘중·고등학생까지 월 50만원씩 주는 방식’을 제안했다. “지금은 이름만 저출산 정책인 경우가 많다. 쓸데없는 부분은 털어내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활용해 정부 차원의 출산지원금이나 부모 수당, 양육 수당 등은 늘려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는 지원금 20만원을 주면 20만원짜리 학원을 보내는 것이 문제다. 사교육 유발 요인을 없애면서 현금성 지원을 늘려야 (저출산 대응에) 효과적일 것이다.”

김태양·김세희씨 부부가 어린이집을 하원하는 태희와 함께 걷고 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국가가 월 100만원 20살까지 줘야”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강진군의 월 60만원보다도 파격적인 금액을 제안했다. 그는 “찔끔찔끔 주다가 돈만 쓰고 실패한 사례는 해외에 차고 넘친다”며 “교육교부금을 재조정해 아이가 20살이 될 때까지 국가가 월 100만원의 아동수당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은 미래가 불확실하고 아이 키우는 게 힘들어서 안 낳는다. 양육비를 파격적으로 주고 애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출산 의욕이 생긴다. 여기에 더해 집도 주고 일·가정 양립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획기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정책을 펼쳐야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국가와 사회가 애 낳는 것을 지지해준다는 신뢰감을 줘야 마음을 바꿀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현금성 지원이 지자체 간 무분별한 지출 경쟁이 돼선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전문가들이 현금 지원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국가 차원의 대책’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이인실 원장은 “지자체 차원에서 돈을 나눠주는 것은 ‘옆 동네 아이 빼앗아오는 제로섬 게임’이다”라며 “한 지역에서 돈을 많이 주면 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거지 출산율 자체가 높아지는 정책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선 효율적인 지출이 될 수 없다”며 “현금 나눠주기는 국가 시책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강진군의 재정자립도는 7.6%다.

단순 계산한다면 강진군이 2022년에서 2023년까지의 출생아 247명에게 월 60만원씩 지원할 때 연간 드는 비용만 17억7840만원이다. 김지혜 팀장은 “예산은 작년에 11억원이 들었고, 올해는 8개월 동안 12억원으로 세웠다”며 “추경으로 (육아수당에 드는) 예산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대 700명을 기준으로 보면 연간 약 50억원 정도가 드는데 작년 저희 예산이 6000억원 정도였다”며 “사실상 육아수당에 드는 예산은 전체 예산의 1%”라고 했다.

서울 어린이집·유치원 4년 후 37% 사라져

이상림 센터장은 강진군의 현금 지원 출산 장려 정책에 대해 ‘목돈 쥐여서 다른 지역 보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강진군의 경우는 신혼부부가 꽤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낳을 생각이 있던 사람들이 예상보다 시기를 앞당겨서 아이를 가졌거나 아이 낳는 사람이 (지원금을 받기 위해) 주소지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어느 정도 지원금을 받다가 떠날 수도 있다. 지역 예산이 인구를 정착시키는 데 쓰이지 못하고 지자체 간 소모적 경쟁을 부추기면 돈만 낭비하게 된다. 지금은 인구 빼앗기의 초기 형태지만 나중에는 정말 거칠게 서로 경쟁할 수 있다.”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방에선 저출산 대책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지만, 사실상 저출산은 서울에서 가장 심각하다. 통계청의 ‘2023년 9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0.1명이 줄었는데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지역은 서울(0.54)이었다. 반면 가장 높은 지역은 전남(0.96)으로 나타났다. 지방은 고령화가 심각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인구 자체가 적지만, 서울은 청년 인구가 비교적 많아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한 ‘저출생시대 어린이집·유치원 인프라 공급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어린이집은 2018년 3만9171곳에서 2022년 3만923곳으로 21.1% 감소했고, 그 사이 유치원은 9021곳에서 8562곳으로 5.1% 줄었다. 저출산이 심화하면서 어린이집·유치원 수 감소 추세는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이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저위 추계)를 활용해 향후 어린이집과 유치원 수를 예측한 결과 2028년까지 31.8%(1만2416곳)의 어린이집·유치원이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됐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특히 부산(39.4%), 서울(37.3%), 대구(37.3%), 인천(34.0%) 등 대도시의 감소율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인실 원장은 “서울에선 집이 없어서 애를 안 낳지만 지방에선 일자리가 없어서 젊은이들이 빠져나간다. 인구 문제의 본질에는 도시집중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 1월 30일 발표한 ‘2023년 국내인구이동통계 결과’를 보면 젊은층은 서울로 들어온 반면 중장년층일수록 서울을 빠져나가는 흐름을 보였다. 서울의 순유입자 수는 10대(7000명)와 20대(4만6200명)에서만 증가했고, 나머지 모든 연령대에선 줄어들었다.

이상림 센터장은 “지역에선 고령 인구 비율이 높고 애를 낳을 수 있는 청년 인구가 부족하다 보니 자꾸 청년을 유입하려고 한다”며 “지역 인구문제의 핵심은 청년이 안 들어와서가 아니라 지역에 있던 청년이 떠나서다”라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 떠나지 않게 만드는 정책을 강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지역 주민을 데려올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지자체에서는 지역에 남아있는 청년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 수 있게끔 기반을 조성해 주는 게 장기적으로 좋은 전략”이라며 “지자체의 현금 지원에 대한 실링(상한선)과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저출산 대책 “딱 표 나올 만큼만”

정치권에서도 총선을 앞두고 저출산 대응을 위한 ‘억대 지원 경쟁’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지난 1월 18일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신혼부부에게 10년 만기로 가구당 1억원을 대출해주고 첫째를 낳으면 무이자, 둘째를 낳으면 원금 50% 감면, 셋째를 낳으면 전액을 감면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자녀 2명 출산 시 24평형(79㎡), 3명 출산 시 33평형(85㎡)의 분양전환 공공임대 주택을 제공하는 내용도 담았다.

국민의힘은 저출산 공약으로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을 현 15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60만원 올리고, 아빠 출산휴가 1개월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공약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부위원장을 지낸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월 1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결혼 시 2억원을 20년간 1% 수준의 저금리로 대출해주고 자녀를 1명 낳을 때마다 원금의 3분의1씩 탕감해주는 ‘헝가리 모델’을 제안했다. 헝가리는 40세 이하 부부가 아이를 낳으면 정부가 4000만원 상당의 대출을 해주고, 자녀 숫자에 따라 최대 100%까지 원금·이자를 탕감한다.

여야의 이런 저출산 공약에 대해 이상림 센터장은 “양당이 표 받으려는 정책만 내세웠다”며 “저출산의 핵심 요인인 수도권 집중이나 사교육비 문제, 집값을 어떻게 떨어뜨릴지에 대해선 아무도 얘기를 안 했다. 정치권이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민의힘의 공약은 아이 키우는 사람들의 표를 받기 좋고, 민주당의 공약은 결혼 앞둔 연령대의 청년들을 당기기 좋다”며 “지금 제시한 공약과 함께 우리가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적 인식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강진군으로 이주해온 김태양씨는 “아직 육아휴직을 쓰려면 회사 눈치가 엄청 보이는 게 현실”이라며 “육아휴직이 강제화된다면 오히려 걱정 없이 모두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강진군 세 쌍둥이 아빠 이동훈씨는 “별도의 육아휴직 신청이 없어도 아이를 낳자마자 아빠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 쌍둥이 엄마 김미나씨는 “저출산 문제만큼은 정쟁으로 가지 않고 여야가 힘을 합쳐 공약들을 다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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