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낮 12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거리. 세 살 아이와 함께 이곳을 찾은 젊은 부부가 삼겹살 컵밥을 주로 파는 점포 앞에서 메뉴를 논의하고 있었다. 일요일이었던 이날 이곳을 주로 찾은 건 이들과 같은 관광객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시생이 줄면서 노량진 컵밥 거리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 경쟁률은 22대1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 2017년 47대1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노량진 상주인구였던 공시생은 줄었고, 컵밥 거리를 관광객이 대신 채우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노량진 컵밥 거리를 찾는 건 ‘가성비’ 때문이다. 외식 물가가 급격히 오르고 있지만 이곳에선 여전히 4000~5500원에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국가 통계 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1월 외식 물가는 작년 대비 4.3% 올랐다.
컵밥 거리에서 만난 권근용(23)씨와 조민지(21)씨는 데이트를 위해 노량진을 찾았다고 했다. 권씨는 “데이트를 한번 하면 다른 곳에선 10만원 정도 쓰는데, 이곳에선 1만원으로도 여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서울로 여행 온 이정기(25)씨는 “저렴한 가격에 여러 메뉴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좋고, 컵밥 테마로 노점상이 늘어선 것도 독특하다”고 했다. 이씨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취지로 노량진 공시생 주제 다큐멘터리를 보여줬다”며 “영상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이 노량진 컵밥”이라고 했다.
컵밥 거리에서 20년 넘게 라멘 가게를 운영 중인 김영순(66)씨는 “주말 하루 손님 120명 중 공시생은 10명 될까 말까 할 정도고, 나머지는 일반 관광객”이라며 “코로나 이전에는 손님의 80%가량이 공시생이었는데 완전히 역전된 상황”이라고 했다. 상인 A씨도 “요즘 방문하는 사람 중 공시생은 거의 없고 외지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16년째 컵밥거리에서 점포를 운영 중인 곽종수(69)씨는 “원래 공시생들만 가게를 찾을 땐 요일에 따른 매출 변동이 없었는데, 이젠 주말이나 연휴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며 “주말 손님이 주중보다 30% 정도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