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중증장애 학생들의 대학 입학·졸업 기념 행사에서 의료진이 학생들을 축하하며 박수 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소정, 이태윤, 김선호씨. /오종찬 기자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 병원 중강당.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강당에 13명의 희소 질환 중증장애 학생들이 모였다. 이들은 모두 사지마비와 호흡장애를 앓고 있지만, 이를 딛고 대학에 입학·졸업했다. 학생들은 영국의 저명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교수처럼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호킹 교수는 근력 약화와 근육 위축으로 사지가 마비되는 루게릭병을 앓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산소호흡기로 조금씩 회복했고, 이렇게 대학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고려대 자유전공학부 입학을 앞둔 권정욱(20)씨는 이날 행사에서 대표로 축사를 했다. 권씨는 “대학 입학이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다섯살이던 2009년 희소한 신경근육 질환인 ‘폼페병’ 진단을 받았다. 서울 용산에 사는 권씨는 2주일에 한 번 강남세브란스 병원에 방문해 4시간 동안 주사를 맞았다. 폐 근육이 약해 평소 숨쉬기 힘들고 어지럼증도 심하다고 한다.

권씨는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기 어려워 학원에 다닐 수 없었다. 고등학생 수험 기간에 인터넷 강의를 보며 3~4시간씩 공부하다 누워 잠시 쉬고, 다시 앉아 공부하길 되풀이했다. 2022년 수능을 보고 고려대 면접까지 봐 대학 합격증을 받았지만, 호흡에 쓰는 근육이 약해져 중환자실에 입원해 입학이 1년 늦어졌다고 한다. 권씨는 “가장 고마운 건 친구들”이라며 “학교에서 넘어진 나를 일으켜 주고, 대학에 합격하자 교실 칠판에 축하한다고 큰 글씨로 써주기도 했다”고 했다.

언어학에 관심이 많은 권씨는 대학 졸업 후 국가기관에서 국어정책 담당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권씨는 “초등학생 때 병원을 자주 오가다 보니 친구들이 없었는데, 중학생 때부터는 친구들이 나를 ‘언어학을 좋아하는 친구’라고 기억해 주기 시작했다”며 “소통에 기쁨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소통의 매개인 언어에 더 애착을 갖게 됐고, 언어와 인지 간의 상관성을 연구해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2011년 뒤센형 근위축증 진단을 받은 김동환(24)씨는 올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졸업한다. 경북 칠곡에서 부모와 셋이서 사는 김씨는 집에서 인공호흡기를 착용하며 지낸다고 한다. 부모와 함께 강남세브란스 병원에 입원과 외래진료를 반복하며 치료 중이다. 김씨는 “병을 앓고 있다고 병원에서만 지내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돼 돈을 벌며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축구 전문 기자가 꿈이라고 한다.

3살 때 척수성 근위축증 진단을 받은 김소정(24)씨는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할 예정이다. 중·고등학생 때 문학을 좋아해 관련 학과로 진학했고,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하루 중 대부분을 전동 휠체어에 누워서 생활하는 그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이씨는 “체력적으로 힘들어 다른 학생들이 21학점씩 수업 들을 때 나는 15학점밖에 못 들었고, 졸업도 1년 늦어지게 됐다”며 “대학 수업 중 시와 소설 쓰기 수업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명지대 미래사회인재학부 입학 예정인 이태윤(19)씨는 2012년 뒤센형 근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병원에서 마주친 또래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기에 이들이 가진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돕고싶다”고 했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가 곤란했는데, 저처럼 휠체어 탄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원활히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했다.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는 김선호(19)씨는 예원예대 컴퓨터애니메이션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김씨의 아버지 김연준(54)씨는 “1년 전 병원에서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을 보며 우리 아들도 이 자리에 설 수 있을지 걱정됐고, 의구심도 들었다”며 “문장 하나를 쓰는 데 30분씩 걸리는 안구 마우스를 써가며 결국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했다. 아버지 김씨는 “환자 보호자들은 경제적, 사회적 활동이 모두 단절돼 무너지기도 한다”며 “환자에 대한 주변 시선이 차갑기도 하고 여전히 차별이 행해지지만, 그래도 우리는 벽을 넘을 것”이라고 했다. 강성웅 강남세브란스 호흡재활센터 소장은 “많은 분의 후원과 학생들의 굳센 의지, 병원 치료 덕분에 여럿이 대학 입학·졸업을 하게 됐다”며 “이번 행사가 신경근육계 희소 난치 질환 환자들을 향한 선입견과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우리 사회의 막힌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