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위치한 한 뷰티 회사 사무실. 한국인 직원이 안내하는 미팅룸으로 들어서자 중앙아시아 출신의 A씨가 기자에게 ‘대표(CEO)’라고 적힌 명함을 건넸다. 회사 내부에는 정부가 수여한 각종 수출의 탑 등 상장과 트로피가 즐비했다. A씨는 전 세계 50여개국에 국산 뷰티 제품을 수출하여 연매출 평균 500억원을 벌고 있는 뷰티 회사의 경영자다. 그러나 A씨는 한국 비자 업무를 위해 최소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기자에게 가장 빠른 출입국사무소 방문 가능 일자가 ‘4월 29일’이라는 예약 화면을 보여주었다.
“외국인은 ‘정부24’ 같은 온라인 서비스 이용이 제한적이다 보니 업무에 필요한 서류 발급이나 체류기간 연장 등을 하기 위해서는 직접 출입국사무소, 주민센터에 가야하는데, 몇 달 전부터 예약이 꽉 차 있어요.”
연매출 500억 경영자도 기약 없는 기다림
그와 함께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출신의 B씨(30대)는 우수인재 특별귀화 조건에 해당해 두 달 전 귀화를 신청했지만, 법무부에서는 ‘1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면접 등 심사 전형 일정을 물어도 ‘알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언제 전형이 진행될지 모르기 때문에 B씨는 해외 박람회에서 바이어들을 만나고 거래처를 확대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해외 출장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추가 매출을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손해, 마이너스예요. 박람회를 못 가면 기존의 거래처를 뺏기는 경우도 많아요.” 그는 “언제 면접 일자가 잡힐지 모르니 해외에 나가는 게 불안하다”며 “면접을 마치고 나서도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은데, 제출 일자를 지키지 않으면 심사가 또 늦어지니 출장을 자제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A씨는 B씨의 상황을 지켜보며 한두 달이면 귀화 과정이 끝난다는 튀르키예, 카리브해의 섬 등 타국으로의 이민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우수인재특별귀화제도’는 과학·경제·문화 등의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 등 특정 능력을 보유하고,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여할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의 복수국적을 국적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인정하는 제도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 “외국인 인재는 보석”이라고 강조하며 이민정책의 일부로 외국인력 선별적 도입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대전 카이스트를 찾아 “우수인재들이 대한민국에서 연구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싶어 하는 한 비자 따위는 걱정하지 않게 해드리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외국인 우수 인재들은 여전히 기본적인 행정 절차조차 안내받지 못하고 있었다. 주간조선이 인터뷰한 4명의 외국인은 ‘우수인재특별귀화’ 과정에 있어 세 가지 문제점을 꼽았다. 심사 과정이 너무 느리고, 심사 일정을 공개하지 않아 업무·공부 등 일상에 지장이 있으며, 과학 분야 위주의 제도라는 점이 그것이다. 지난 2월 2일 국민의힘이 ‘한동훈표 이민청 설립안’인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이른바 ‘이민국가’로 가는 첫발을 뗐지만, 외국인 우수인재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에서 한 위원장의 포부만큼이나 이민국가로 순탄히 갈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7개국에 한국의 중장비 및 부품을 수출하는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외국인 C씨(40대)는 2017년에 우수인재로 특별귀화를 했다. 그는 당시 우수인재를 신청하고 심의위를 거쳐 귀화가 되기까지 3~4개월 정도 소요됐다고 전했다. “그때는 절차가 간단했는데, 지금은 절차가 복잡하다, 길어졌다, 디테일한 안내가 없어졌다고들 해요.” 그는 7년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지만, 특별귀화 후에 사업하기가 더욱 편해졌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신분으로는 비자만 신청해도 10일을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은 당장 내일 일본에서 미팅이 생겼다고 해도 바로 참여가 가능하죠. 외국인 신분으로는 실수로 200만원 이상의 벌금을 물게 되면 바로 한국에서 쫓겨나야 했지만 지금은 비교적 안심하고 사업을 할 수 있어요.” 그는 특별귀화 이후 정부로부터 ‘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여받고, 코로나 팬데믹 때에는 기부를 하는 등 한국 사회에 다양한 기여를 해오고 있었다.
외국인 우수인재가 특별귀화를 하기 위해서는 국적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적심의위원회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사람으로서 관계 부처로부터 추천을 받은 민간전문가와 관련 부처 공무원 등 20인으로 구성된다. 법무부의 위원회 활동내역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수인재 특별귀화 안건으로 개최된 회의는 총 6회다. 이 6회 동안 심의위가 심사한 우수인재특별귀화(국적회복허가 포함) 신청건은 총 198건이다.
부족한 심사 인력, 지난해 회의 6번뿐
한 이민정책 전문가는 “지난해 법무부에 문의했을 때 올해 하반기에야 국적심의위원회가 개최될 예정이라고 하더라”며 “신청 몇 건당 심의위가 열리는 것인지 등 정확한 기준을 알려주지 않아 소요 기간에 대해 신청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부 관계자는 국적심의위원회에 대해 “없는 인력으로 하다 보니 지연이 될 수는 있지만 최대로 하고 있다. 법무부장관이나 차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를 기준으로 소집한다”며 “올해는 연간 일정으로 4회가 계획되어 있다”고 답했다. 앞서의 A씨는 “코로나가 끝나면서 외국인 유입이 많아진 반면 출입국사무소의 창구나 직원 수는 줄어들었던 그대로”라며 인력 문제를 짚었다.
‘과학 인재’에만 치우쳐진 제도라는 점도 사실 문제다. 13년 전 러시아에서 서울으로 이주한 D씨(30대)는 서울의 한 대학 소속의 연구원이다. 한국말이 유창한 그는 국제적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 저널인 SSCI(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 A&HCI(예술및인문과학논문인용색인)급 학술지에 총 7편의 논문을 등재하고, 전문분야 저서를 5권이나 쓴 인재다. 그러나 우수인재특별귀화제도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일반귀화’를 신청했다. 우수인재 평가기준에서 과학기술우수인재의 경우 영주·귀화 패스트트랙이 존재해 필수 요건에 경력연수가 필요없지만, 인문 우수인재의 경우 사학재단 대학 소속은 안 되고, 부교수 등으로 N년 이상 재직해야 하는 등 필수 요건이 훨씬 많다.
실제로 2020년 기준 과학분야는 98명, 인문분야는 29명이 우수인재로 선발돼 학술분야 간 국적 취득에 큰 차이를 보였다. D씨는 “젊은이들의 경우 국내외 4년제 대학에서 부교수 등으로 몇 년간 재직한 경력을 갖기 힘들다”며 “인문 인재 또한 학술지 논문 게재 숫자가 많으면 경력연수는 보지 않는 등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D씨는 일반귀화 심사의 경우에도 소요 기간에 대해 법무부로부터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받은 상태다. 그는 “영국 등 다른 국가에 비해 귀화 과정이 까다롭고 길다”며 “2022년 5월에 귀화 신청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언제 과정이 끝날지 알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