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혼인이 줄어든 만큼 출산율도 같은 속도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이런 문화 때문에 비혼(非婚) 확산으로 혼인 건수가 줄자 출산율도 동반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1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작년 혼인 건수는 19만3657건으로 2022년(19만1690건)보다 1% 늘어났다. 코로나 사태로 미뤄진 결혼이 2022년 하반기와 작년 상반기에 몰리면서 12년 만에 혼인 건수가 소폭 반등한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혼인 건수가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다. 2013년 32만2807건이던 혼인 건수는 10년 사이 40%나 줄었다. 눈여겨볼 부분은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도 거의 같은 비율로 줄었다는 것이다. 2013~2023년 사이 출산율은 1.187명에서 0.72명으로 39.3% 하락했다.
비혼주의는 저성장, 개인주의 심화 등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결국 출산율을 높이려면 극도로 낮은 우리나라의 ‘비혼 출산’ 비율을 대폭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비혼 출산 비율은 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다. OECD 평균(41.9%)의 17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40.5%), 영국(49%), 프랑스(70.4%) 등 주요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벌어진다.
비혼 출산이 활발한 나라는 합계 출산율도 높은 편이다. 비혼 출산 비율이 70.4%인 멕시코의 출산율은 1.82명(2021년 기준)이나 된다. 비혼 출산 비율이 62.2%인 프랑스의 출산율도 1.8명(2022년 기준)으로 10년 연속 유럽연합(EU) 1위를 기록했다. OECD에 따르면 39개 회원국 중 비혼 출산 평균 비율을 웃도는 나라들의 합계 출산율은 1.61명인 데 반해 평균을 밑도는 나라들의 합계 출산율은 이보다 0.16명 낮은 1.4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학계 권위자인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작년 국내 학술 세미나에 참석해 “출산율이 1.6명을 넘는 나라 중 비혼 출산 비율이 30% 미만인 나라는 한 곳도 없다”고 밝혔다.
◇비혼 출산, 출산율과 높은 상관관계
비혼 출산을 높일 경우, 출산율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연구한 결과도 있다.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연구에 따르면, 비혼 출산 비율이 1%포인트 상승할 경우 합계 출산율을 0.0075명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 교수는 “한국 비혼 출산 비율이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라갈 경우 합계 출산율을 0.3명가량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말했다.
비혼 출산 확대가 출산율 반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비관적 시각도 있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개방적인 문화를 가진 서구권과 달리 우리나라는 동거나 혼전(婚前) 임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비혼 출산을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혼 출산 비율이 40%를 넘는 미국, 스페인, 영국과 같은 나라도 불과 50~60년 전에는 비혼 출산 비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역시 비혼 출산 비율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닫혀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도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통계청 사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중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지난 2022년 34.7%로 10년 전(22.4%)보다 12.3%포인트 늘었다. 특히 미래 세대인 10대와 20대의 답변율은 각각 44.1%, 39%에 달했다. 같은 기간 ‘혼전 동거’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45.9%에서 65.2%로 19.3%포인트 상승했다.
◇빈약한 ‘비혼 가정’ 지원책
비혼 출산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비혼 가정에 대한 지원은 빈약한 상태다. 대표적인 것이 세금 관련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 아이를 낳을 경우 엄마에게 우선적으로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한다. 이때 엄마의 법적 지위가 ‘미혼모’이기 때문에 부부 단위 가정에 주어지는 각종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예컨대 아이의 아빠가 일을 하면서 비혼 가족을 부양해도 소득세를 낼 때 인적 공제나 교육비 혜택 등을 받을 수 없다.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에 ‘혼인 외 출생’ 표시가 남는 것도 문제다. 아이에게 평생 ‘혼외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비혼동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동거 가족의 46.8%는 자녀 양육에 대해 “부정적 시선이 걱정된다”고 답했다.
회사에서는 가족에 대한 모호한 기준 때문에 벽에 부딪힌다. 사실혼 상태인 근로자의 경우, 출산휴가나 가족돌봄휴가 등을 쓰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동거 상태를 입증할 증인을 구해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등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비혼 커플은 신혼부부 행복주택에 지원할 수 없고, 주택청약 시 받는 가점에서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비혼 커플 중 한 명이 아파서 급히 수술을 해야 할 때도 큰 문제가 발생한다. 법적으로 가족만 수술 동의서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제도상 부부를 지원할 때 혼인 관계를 전제로 하는 탓에 의료나 출산·육아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작년에 발의된 ‘생활동반자법’과 같이 비혼 출산 가구를 인정하는 제도적 장치와 함께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