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강남구 SETEC에서 개막한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VR 기기를 쓰고있다. '제행무상'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가상현실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기기라고 한다./김병권 기자

“물가가 올라가서 고통(고통)! 월요일이 빨리 와서 고통(고통)! 친구가 잘 나가서 고통(고통)! 이 또한 지나가리. 이 또한 지나가리. 고통을 이겨내자! 극락왕생!”

지난 4일 오후 찾은 서울 강남구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 법복을 입고 삭발에 헤드셋을 낀 스님이 ‘극락(極樂)도 락(rock·樂)’이라는 제목의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찬불가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목탁소리가 평범하게 나오는 듯하다가 이내 비트가 강렬한 전자음악(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으로 갑작스레 전환됐다. 행사장은 순식간에 콘서트장이 됐다.

2024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선보인 DJ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의 디제잉 무대. 20·30대에게 친숙하게 접근하기 위해 ‘재밌는 불교’를 행사 컨셉으로 잡았다. /김병권 기자

무대에 선 주인공은 DJ 뉴진스님, 개그맨 윤성호의 부캐(부캐릭터)다. 불교에 대한 편견을 깬다는 취지로 ‘뉴진’이란 법명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인기 아이돌 그룹 뉴진스(New Jeans)와 독음이 같지만 뜻은 다르다. 불교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새롭게(new) 나아간다(進)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무대가 펼쳐진 곳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진행된 ‘2024서울국제불교박람회’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주최한 이번 박람회는 ‘재밌는 불교’라는 슬로건 아래 불교 공예, 승복 등 의류, 사찰음식, 불교 미술 등 다양한 불교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부스들이 차려졌다. AI 부처에게 고민을 상담하거나, ‘인스타’로 포교하는 팔로워 3만 1000명의 ‘꽃스님’ 화엄사 범정 스님 등의 강연도 있었다.

“이런 스님도 받아들이는 불교의 포용력이 놀랍다”는 긍정적인 반응에서부터 “그래도 종교가 지켜야 할 거룩함이란 것이 있는데, 불교가 오염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반응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이런 행사를 기획한 데는 불교 신자가 감소해서 위기감을 느껴서라고 한다. 특히 무종교 인구가 많은 20·30에 친숙하게 접근하기 위해 ‘재밌는 불교’를 행사 컨셉으로 잡았다고한다.

서울국제불교박람회 관계자는 “역사든 문화든 사람들한테서 잊히는 게 가장 안 좋다고 생각하는데, MZ 세대들이 관심 있을 만한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도 불교를 접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며 “불교를 희화화하지 않는 선에서 불교만의 메시지를 담아내면서 ‘재미있는 불교’를 경험하도록 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SETEC에서 개막한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AI 기술을 활용한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고민상담소'서 줄 서 있는 모습./김병권 기자

AI 알고리즘에 불경 내용을 입력해 만들어낸 ‘AI 부처’에 상담을 하는 곳에도 관람객들이 모여있었다. 부스 내의 ‘열암곡 마애부처님의 고민상담소’에는 관람객 10여 명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AI 부처가 한 답변을 보고는 “우와! 대박인데?”라는 탄성을 내뱉은 공예과 대학생 김모(24)씨는 “대학원 진학을 할 예정인데, 석사 전공을 미술과 마케팅 중에 무엇으로 할지 고민이 있어서 여기에 물어봤다”고 했다. 김씨는 “‘자신이 진정으로 열정을 느끼고, 장기적으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답변이 나왔는데, 심적으로 위로가 된다”고 했다.

박람회 곳곳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이어졌다. 케이팝 아이돌 그룹 ‘하이키’의 공연도 진행되고, VR 기기를 통해 ‘제행무상(현실 세계의 모든 모습이 계속 변화한다)’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체험해보는 코너도 있었다. ‘깨닫다!’ ‘극락도 락이다’ ‘번뇌멈춰’ 등 불교의 가르침을 적어둔 티셔츠와 스티커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행사장에는 주로 20·30대 참여자들이 주를 이뤘다. 국제불교박람회 관계자는 “작년에 20·30 방문객이 10%에 그쳤는데, 올해는 80%로 폭증했다”고 전했다.

“불교가 힙해졌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오랜 시간 불교 신자였다는 최희(62)씨는 “찬불가에 EDM 노래를 입혀 디제잉하는 공연이 신선하게 느껴졌고, 누구나 다 수용할 수 있는 불교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대학생 강모(25)씨는 “불교가 내 예상보다 더 현대화되어 있고, 일상에서 사용할 만한 다기용품도 많아서 앞으로 절도 자주 가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엔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부스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산중 면벽 수행을 떠나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긍정적인 시도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불교가 결국 추구하는 건 결국 참된 나를 찾는 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굳이 산 속에서만 할 필요는 없다”며 “대중과 너무 거리감 있는 종교보다는 대중들에게 가까이 들어오는 종교가 의미가 있고,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문화적인 요소를 가미해 거부감 없이 종교를 알리는 방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