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밤 ‘보일러룸 서울 2024′ 디제잉 공연이 열린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에스팩토리의 모습. 1000명까지 수용 가능한 공연장에 4500여 명이 몰려 움직일 틈도 없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사진이다. /인스타그램

지난 28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공연장에 유명 DJ를 보겠다는 인파 수천명이 몰려 행사가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압사 사고가 발생할 것 같다”는 경찰·소방 신고가 빗발쳤고 일부 관객은 호흡곤란을 호소하기까지 했다. 2022년 핼러윈 참사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인파 관리(크라우드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성수동 공연장에선 이 같은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성수동의 문화복합공간 에스팩토리 D동에서 지난 27일 오후 9시 열린 ‘보일러룸 서울 2024′ 공연은 당초 28일 오전 4시에 끝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세계적 음악 프로듀서인 페기 구가 이날 오전 1시쯤 무대에 오르기 직전, 페기 구를 보겠다는 인파가 갑자기 공연장 3층으로 몰리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한 관객은 “이미 공연장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들어차 있는데 입구로 계속 사람들이 들어오더라”며 “이태원 참사가 생각이 나서 겁이 났다”고 했다. 1859㎡ 크기 3층 공연장 수용 정원은 1000명이었지만 이미 포화 상태였다. 주최 측이 3층 출입구를 통제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페기 구를 보겠다며 1층에서 3층으로 올라온 관객들이 “들여보내 달라”고 아우성을 쳤고 공연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지난 27일 밤 디제잉 공연이 열렸던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에스팩토리. 공장 건물을 개조해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장윤 기자

과거 공장으로 쓰던 시설을 개조한 공연장은 창문이 없었고 냉방·환풍 시설도 미비했다. 마치 사우나처럼 변한 공연장에서 일부 관객은 탈진했고, 바닥에 누워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들은 3층 공연장 바깥으로 탈출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1층에서 진입하려는 관객들을 막기 위해 출입구가 통제된 상황이어서 사실상 갇혀버리고 말았다. 새벽 1시를 전후해 경찰·소방 신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1만명은 몰린 것 같다” “빨리 와서 통제해달라” 같은 신고 수십여 건에 경찰·소방이 현장에 출동해 인파를 해산시켰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1층, 계단, 3층 할 것 없이 사람들이 꽉 차 서로 밀리고 있었다”고 했다. 한 소방관은 “이런 공간에서 만약 화재라도 발생했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대형 참사가 날 뻔했다”고 했다 공연장 바깥에도 입장을 기다리는 인파 수백명이 몇 겹으로 줄을 서 있었다.

현장에 있었던 직장인 김모(27)씨는 “실내에서 페기 구를 기다리던 관객들이 더위와 탁한 공기에 지쳐 하나둘씩 주저앉기 시작했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계속 사람들이 밀려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객 이모(31)씨도 “주최 측이 상황을 통제한답시고 일방적으로 출입구를 차단해서 ‘나가게 해달라’는 사람들과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엉켜 현장이 엉망이었다”고 했다.

일부 관객은 “주최 측이 수용 인원보다 표를 많이 팔았다”고 주장했다. 소방은 이날 모인 관객을 45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주최 측은 “1층, 3층 공연장 면적을 다 합치면 대략 4000㎡ 정도라 표 4000장을 판매했고 입장 인원은 3000명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페기 구를 보기 위해 현장에서 표를 구하려는 관객이 1000명 이상 몰리면서 공연장 일대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돌변했다. 관객 항의가 이어지자 주최 측은 전액 환불 방침을 밝혔다.

핼러윈 참사 이후 행정안전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업무 계획을 보면, 인파가 몰리는 장소의 유동 인구를 분석해 사고를 막는 ‘현장 인파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돼 있다. 인공지능(AI)으로 유동 인구와 교통 데이터 등을 분석해 위험도를 실시간 감지·전파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수동 사고 당시 경찰·소방·서울시·성동구 등은 현장 관객들의 신고 전까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사설 업체가 주최한 공연이라 사전 방지가 어려웠다”고 했다. 성동구도 공연법에 따라 ‘재해 대처 계획서’를 미리 받았지만 “요건이 맞아서 접수를 해줬을 뿐, 개입엔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인파가 몰리는 축제·행사는 주최자 유무와 관계없이 지자체가 안전관리 대책을 수립하겠다는 2023년 행안부 발표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