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전차선(線) 보수 작업을 하던 30대 청년 두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개월간 서울 지하철 연신내역·양재역·삼각지역에서 근로자 3명이 사망한 데 이어 이번에도 귀중한 인명이 희생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책임자들의 관리·감독이 부실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9일 오전 2시 14분쯤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선로 전차선을 보수하려고 작업 열차에 올랐던 근로자 3명이 사상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가산디지털단지역 방향 하행선을 따라 5m 높이 작업대(바스켓)에 올라 해당 선로 전차선을 고치던 중 반대 방향에서 달려온 선로 점검 열차에 치여 변을 당했다. 32세 정모씨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31세 윤모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숨졌다. 50대 근로자는 골절상을 입었다. 맞은편 선로 점검 열차를 몰던 40대 운전자도 타박상을 당했다. 이들은 코레일 수도권 서부본부 소속 직원들로, 4조 2교대 체제로 돌아가며 주·야간 작업을 병행했다고 한다.
코레일 안팎에선 당국이 안전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열차 운행이 중단된 새벽에 작업을 실시했는데도, 작업 열차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두 명이나 사망할 만큼 심각한 관리 부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22년 새로 도입된 작업 열차의 작업대 활동 반경이 마주 오는 선로를 침범할 만큼 넓은데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사고 현장을 조사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작업대(바스켓)는 좌우 방향으로 조정이 가능한데, 옆 선로로 튀어나와 달려오던 차량과 부딪친 것”이라고 했다. 사고 가능성이 농후한 장비를 운용 중이었음에도, 반대편 철로에서 선로 점검 열차가 아무 제지 없이 달려올 수 있었던 이유를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선로 유지 관리 지침’을 보면 이 같은 보수 공사 전엔 각종 안전·위험 요소를 판단한 계획서를 작성하고, 소관 부서장이 책임을 지도록 명시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계획이 제대로 수립·이행됐는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양측 선로 근로자들이 서로의 작업 상황을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며 “알았다고 하더라도 두 작업 상황을 통제하는 주체가 없었거나 역할을 제대로 못 한 것”이라고 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반대편 선로를 차단했다면 인명 피해가 당연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새로 도입한 작업 열차의 특성이 안전 매뉴얼에 반영됐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국토교통부는 “안전 규정 및 작업자 안전 수칙 준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고, 유사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항이 있는지 조사 중이다.
이날 사고로 숨진 정씨와 윤씨는 각각 2018년, 2021년 입사한 청년이었다. 오후 4시쯤 서울 고대구로병원 장례식장에 급하게 마련된 윤씨의 빈소엔 영정도 없었다. 어머니 등 유족들은 윤씨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꼈고, 주변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거동했다. 한 직장 동료는 생전 윤씨에 대해 “엄마에게 진짜 착한 아들이었다”며 “순수하고 마음 넓었던 청년”이라고 했다. 정씨는 서울의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 코레일에 입사해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유족들은 “가족들에게 잘하는, 딸 같은 막내아들이었다”고 했다.
지난달 17일 서울 서초구 신분당선 양재역에서 역사 내 천장에 유도등을 설치하던 60대 일용직 남성이 사망했다. 같은 날 오전엔 6호선 삼각지역 환기 시설에서 투광등을 설치하던 50대 남성이 감전사했다. 지난 6월에도 3호선 연신내역 지하 1층 전기실 단전 작업자가 사망했다.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은 “더 이상 참극이 발생하지 않게 철저한 안전 대책과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