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끝이 다가오네, 난 내 인생의 마지막 장을 마주하고 있네...”

1950년대 미국의 팝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 곡조 속에 원로 주먹 ‘신상사’ 신상현씨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자 도열한 조폭 200여명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지난 10일 오전 세상을 떠난 신씨의 발인식이 12일 오후 12시 4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렸다.

신씨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40년 간 명동을 주름잡은 1세대 조폭이다. 김두한, 이정재, 시라소니(본명 이성순)와 같은 시기 활동해 ‘생존한 대한민국 조폭의 최고 실세’로 꼽혔다.

1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신상현씨의 유족과 최측근 조폭들이 신씨를 애도하는 모습. 평소에도 신씨에 노래를 자주 불러줬다는 최모씨가 신씨에게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불러주고 있다. /장윤 기자

장미와 백합으로 장식된 신씨의 운구차를 둘러싼 유족들은 입을 막고 흐느꼈다. 조폭들의 눈시울은 붉어졌지만 이들은 끝내 눈물을 떨구지 않았다. 운구차와 함께 서울추모공원으로 떠나는 이 조폭들은 신씨의 최측근인 고위급 조폭들이다. 다른 조폭 200명은 장지에서 대기했다.

12일 신상현씨의 최측근 조폭들이 운구차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장윤 기자

신씨와 60여년을 함께 했다는 90대 조폭 A씨는 휠체어를 탄 채 신씨의 관이 운구차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A씨는 다른 노인 조폭들에게 “다음은 우리 차례”라며 “이렇게 한 시대가 저무는구나”라고 말했다. 이태원동·상계동·영등포구 두목 등 서울 각지 조폭 두목들은 한데 모여 신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12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조폭 200여명이 신상현씨 운구차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 신씨와 함께 장지로 떠나는 이 조폭들은 신씨의 최측근들이다. /장윤 기자

신씨의 관을 붙잡고 ‘마이웨이’를 부른 70대 여성 주모씨는 “1996년 어느 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오빠’를 만났다”며 “신씨는 친오빠가 없던 내게 오빠 같은 존재라 힘들 때마다 의지했다”고 했다. 신씨는 “평상시에도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마이웨이’를 불러달라고 했는데, 마지막 가는 길에도 이 노래를 불러준다”며 눈물을 훔쳤다.

장례위원장 홍인수(73)씨는 “발인식에 블랙 세단 100대를 동원해 서울아산병원부터 서울추모공원까지 ‘형님’을 모실 계획이었지만 포기했다”며 “언론에 블랙세단 동원 계획을 밝힌 후 경찰이 세단 동원을 막았다”고 했다. 홍씨는 “’형님’ 가시는 길에 시민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건 우리도 바라지 않는다”며 “조폭들은 각자 자가용을 타고 ‘형님’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갈 것”이라고 밝혔다.

1932년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숭실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49년 육군에 입대한 뒤,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됐다. 이후 1953년 대구 특무부대에서 1등 상사로 전역한 경력 때문에 ‘신상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듬해 대구에서 상경한 뒤 명동 중앙극장 옆을 본인의 근거지로 삼았다. 우미관의 김두한, 명동 시공관의 이화룡, 종로파의 이정재가 서울에서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을 당시 고인은 독자 조직을 꾸리며 이화룡의 명동연합에 느슨하게 결합했다.

고인은 1970년대까지 명동을 장악하고 신상사파의 보스로 활동했다. 미디어에 잘 나오지 않거나 단명(短命)한 기존 조폭들과 달리 90이 넘는 나이까지 활동을 하며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회고록을 출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