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에서 고모(30)씨의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신부 예물 교환 식순이 되자 식장 입구에 고씨의 반려견 모래(1세·말티푸)가 나타났다.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예물 가방’을 멘 모래가 단상으로 달려가자 하객들은 환호하며 사진을 찍었다. “귀여워!” “어떡해!” 탄성이 터졌다. 신랑 박모(29)씨는 모래를 안아들고 반지를 꺼냈다.
사람 화동(花童) 대신 ‘화견(花犬)’이 결혼식에서 반지를 전달하는 시대다. 고씨는 “남편의 오촌 조카와 모래 중 누구를 화동으로 세울지 고민했는데, 만나본 적 없는 오촌 조카보다 남편과도 친한 모래가 더 가족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경기 고양시의 한 웨딩홀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최근 2년 동안 강아지 화동 문의가 부쩍 늘었다”며 “올해는 작년의 두 배 수준”이라고 했다. 반려인들은 “내 가족과도 같은 반려견과 인생의 중요한 행사를 함께하고 싶다”고 한다. 지난해 KB금융그룹 조사에서 “반려동물이 가족의 일원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반려 가구는 81.6%였다. 결혼식장에 온 반려동물들은 인간 하객과 똑같이 함께 사진을 찍곤 한다.
지난 3월 올려진 채모(28)씨의 결혼식에도 헤링본 정장을 갖춰 입은 ‘지구(4세·포메라니안)’가 라이언킹 OST에 맞춰 등장했다. 사회자는 “지구가 놀라지 않도록 환호성이나 큰 박수 대신 따뜻한 눈빛과 가벼운 박수로 맞이해 달라”고 안내했다. 채씨는 “결혼식 사진이나 영상도 부모님과 지구 위주로 찍었다”고 했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강아지를 돌봐 달라”는 수요가 늘자 지난해 웨딩 전문 반려동물 돌봄 업체까지 등장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반려동물과 하객들 간 마찰을 줄이는 게 주된 업무”라며 “한 달에 3~5건의 돌봄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는 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