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3시 48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월동의 한 도로에서 추돌사고 뒤 사망한 운전자의 차량. 사고 당시 이른바 '음주운전 헌터'라 불리는 유튜버가 이 차량을 뒤쫓았었다. /독자 제공

지난 22일 새벽 광주광역시에서 ‘음주 운전 추적’ 유튜버를 피해 달아나던 30대 남성 운전자가 대형 트레일러를 들이받고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이 운전자는 유튜버 A씨 등이 탄 차량 3대와 약 1.9㎞ 추격전을 벌인 끝에 숨졌다. 이 과정이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돼 400여 명이 지켜봤지만 유튜브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위험천만한 방송을 방치한 유튜브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튜버 A씨는 밤 거리에 잠복해 있다가 술을 마신 것으로 의심되는 운전자를 추적·응징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는 유튜버다. 스스로를 ‘광주 보안관’이라고 부른다. 온라인에서는 ‘음주 운전 헌터(사냥꾼)’라고도 불린다.

A씨는 지난 1월 생중계 도중 음주 운전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운전자와 실랑이가 붙어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A씨는 유튜브 생중계를 계속했고 결국 사망 사고까지 발생했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7만명이 넘는다. 영상은 800개가 넘는다.

경찰 대신 민간인이 하는 이른바 ‘사적제재(私的制裁)’는 위법이다. A씨의 행위는 사적제재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유튜브에 ‘사적제재’ ‘사적보복’ 콘텐츠가 증가하고 있다”며 “조회 수가 곧 수익이다 보니 자극적인 콘텐츠가 양산되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번 사망 사고를 계기로 “음주 운전이 불법이긴 하지만 경찰도 아닌 유튜버가 이른바 ‘사적제재’를 하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24일 광주광역시 광산경찰서에 따르면, 22일 오전 3시 50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월동의 한 교차로에서 B(35)씨가 몰던 BMW 차량이 갓길에 주차돼 있던 대형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BMW 차량은 완전히 불탔고 B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사고 전 유튜버 A씨는 광산구 월계동 인근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B씨의 차량에 다가가 “술을 마셨느냐” “음주 운전 신고를 했다”면서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이 모습은 A씨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이후 B씨는 A씨의 추격을 피해 약 1.9㎞를 달아나다 추돌 사고를 냈다고 한다.

당시 방범카메라 영상에는 차량 3대가 B씨를 뒤쫓는 모습이 담겨 있다. A씨 외에도 A씨 영상을 즐겨 보는 이른바 ‘추종자’들이 모는 차량 2대가 더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B씨의 음주 여부에 대한 감정을 의뢰하는 한편, A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사고와 연관성을 조사 중이다.

사망한 운전자 유족들은 “아무리 음주 운전이 중죄(重罪)라도 경찰도 아닌 유튜버가 이렇게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아도 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한 유족은 “B씨가 4년 전부터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고 A씨 영상을 자주 봤다고 한다”며 “A씨의 추격에 심한 압박감을 느껴 사고를 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동안 A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에는 운전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거나 폭언을 주고받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지난 3월 영상에서 A씨는 차량을 주차한 뒤 집에 들어가려는 운전자를 붙잡고 “음주했잖아요” “동영상 다 찍어”라면서 실랑이를 벌였다. 또 다른 영상에는 음주 운전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차량을 뒤쫓아가 경찰에 신고한 뒤 “또 잡았다” “이렇게 또 1승을 땄네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담겼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B씨를 뒤쫓는 과정에서 B씨가 위협을 느낄 만한 행위를 했는지, 그 행위를 사고 원인으로 볼 수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며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입건할 방침”이라고 했다.

◇돈벌이 수단 된 유튜브 ‘사적제재’

최근 유튜브에는 ‘사적제재’ ‘사적보복’ 콘텐츠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가 정의를 구현한다”는 사람들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면서 조회 수를 올리는 것이다. 지난 1월에는 한 유튜버가 60대 경비원을 폭행한 10대 남학생을 붙잡아 무릎 꿇게 한 뒤 욕설을 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이 유튜버는 “할아버지 폭행범을 잡아 참교육했다”고 했다. 이 영상은 조회 수가 34만회에 달했다. “경찰 대신 시민들이 범죄자를 잡아 통쾌하다”는 댓글도 여럿이다.

조회 수가 곧 돈이다 보니 ‘정의 구현’ 콘텐츠의 수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부산지법 인근에서 50대 유튜버가 다른 유튜버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모습을 생중계했다. 당시 피습 장면과 피해자의 비명 등이 여과 없이 유튜브를 탔다.

콘텐츠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 유튜버는 마약 사범들을 경찰에 제보하는 영상을 올려 인기를 끌었다. 영상을 찍기 위해 위험천만한 도심 추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실시간 생중계 영상에는 시민들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됐다.

유튜버가 불확실한 제보를 근거로 개인 신상을 무단 공개해 제3자가 피해를 보기도 한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신상을 폭로하던 한 유튜버는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의 여자 친구로 지목해 논란이 일었다. 가해자의 여자 친구로 지목된 여성은 온라인에서 ‘마녀사냥’을 당했고 이 유튜버는 명예훼손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전문가들은 “민간인인 유튜버가 범죄 의심자를 뒤쫓아 처벌하는 ‘사적제재’ 영상은 사람들의 복수심과 분노를 조장하고 공권력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윤호 교수는 “우리나라 헌법은 어떤 개인에게도 다른 사람을 제재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며 “‘정의 구현’이라는 가치가 유튜브 조회 수를 올리는 수단이 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