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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에 사는 가정주부 최모(46)씨는 요즘 심한 코 막힘과 눈 따가움으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진단은 알레르기성 비염과 결막염이다. 최씨는 돼지풀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다. 잡초 중 하나인 돼지풀은 알레르기 항원이 많아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하천 주변이나 숲, 공원 등에 많다. 동네 하천 주변을 산책하면 최씨의 비염 증세는 심해진다.

그는 매년 시즌마다 겪는 계절형 알레르기 환자이기에, 돼지풀 꽃가루가 심한 8월 말이나 9월 초를 항상 긴장하며 지냈다. 하지만 올해는 9월 초에 알레르기 증세를 겪지 않고 지내다가 10월이 돼서야 시달리고 있다. 지난여름 폭염이 극심한 데다, 무더위가 9월 하순까지 이어져 꽃가루 생성이 줄고, 발생 시기도 늦춰진 탓이다. 삼성서울병원 알레르기내과 강노을 교수는 “공기가 건조해지고, 선선해지기 시작하던 8월 말이나 9월 초에 진료실을 찾던 알레르기 환자들이 올해는 9월 말과 10월 초에 몰려오고 있다”며 “환자들도 자신의 증세가 늦게 나타난 것을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철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알레르기 환자는 봄·가을에 많다. 9월에 257만여 명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4월(243만여 명)이다. 하지만 올해는 긴 여름 탓에 10월에 환자가 가장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반도가 무더운 여름이 길게 늘어난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면서 질병 발생 패턴이 바뀌고 있다. 요즘 선선하고 서늘한 아침 공기로 천식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늘고, 코점막 과민 반응으로 재채기를 하거나 콧물을 훌쩍이는 감기 유사 증세를 호소하는 이가 증가했다. 일교차가 커지고 공기가 건조해지기 시작하는 9월경 늘기 시작하던 환절기 호흡기 질환이 10월로 옮겨 온 것이다.

온난화 여파로 우리나라 계절은 여름이 극단적으로 길어지는 변화를 겪고 있다. 100년 새 여름은 한 달 가까이 늘어난 반면, 겨울은 20일이 줄었다. 기상청이 1912년부터 기록이 존재하는 전국 관측 지점 6곳(서울·인천·대구·부산·강릉·목포)을 기준으로 최초 9년(1912~1920년)과 최근 10년(2011~2020년)의 여름 길이를 비교한 결과 96일에서 127일로 31일(32.3%) 늘었다. 같은 기간 겨울은 107일에서 87일로 20일(18.7%)이 줄었다. 가을은 74일에서 64일로 열흘, 봄은 88일에서 87일로 하루가 각각 줄었다.

뇌졸중은 대개 추운 겨울에 환자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여름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탈수가 뇌졸중 촉발 요인으로 작용해 7월에 많고, 일교차가 커진 10월에도 발생 환자가 많아졌다. 올해도 이와 비슷한 뇌졸중 발생 패턴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므로 뇌졸중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한 해 뇌졸중 발생 환자는 10만8900여 명이다(2021년).

가을철 야외 활동 과정에서 걸리게 되는 진드기 매개 질병이나 쓰쓰가무시병에 대한 위험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높은 기온은 진드기와 진드기들이 전파하는 병원체의 번식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드기의 활동 시기도 높은 기온에 따라 길어지므로, 올해는 예년보다 늦은 가을까지 진드기 물림 감염병 위험이 계속될 수 있다.

진드기는 주로 풀밭이나 덤불, 농작업을 하는 환경에 서식한다. 야외 활동 할 때는 진드기에게 물리지 않도록 가능한 한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맨살이 풀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야외에서 휴식할 때는 맨바닥에 앉지 말고, 돗자리를 쓰는 게 좋다. 야외 활동 후 몸에 벌레 물린 상처가 있거나 검은 딱지가 생겼으면 신속히 병원을 찾아야 한다.

올겨울 독감과 코로나19 유행 시기도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독감은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사람과의 접촉이 밀접해지면서 유행하는데, 올해는 그 시기가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난여름에 기온에 상관없이 유행하던 코로나19 감염자가 많았는데, 이들의 항체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기인 12월경에는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래도 독감 백신은 10~11월 예정된 시기에 맞아 두는 게 좋다”며 “코로나19 재유행에 대비해 고령자와 만성질환자들은 독감과 코로나19 백신을 양쪽 팔에 하나씩 동시에 접종받는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