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곰팡이 냄새와 함께 눈을 떴어요. 학교에서 단체 과제를 할 때면 늘 다른 친구네 집으로 가요. 우리 집에는 아무도 초대할 수 없었거든요.”
현주(가명‧14세)양의 집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중국요리점에 딸린 창고였다. 나무판자와 비닐로 덧댄 공간에는 제대로 된 출입문도 없었다. 천막으로 가려놓은 미닫이문이 전부였다. 이곳으로는 여름철 찜통 같은 열기와 겨울철 냉골 바람이 그대로 들이쳤다.
벽지 문양의 시트지를 붙여 집 구색만 갖춘 가건물에 보일러 사용은 여의찮았다. 제대로 된 창문도 없다 보니 집안 곳곳은 곰팡이와 쥐들의 오줌 냄새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현주에게 가장 힘든 건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세면대는커녕 변기 뚜껑만 올려놓은 임시 변기에서 볼일을 봐야 했다. 오래된 기차역 화장실이 그나마 편했다. 현주는 “화장실이 너무 더럽고 무서워서 집 주변 역 화장실을 이용했다”며 “그마저도 역이 폐쇄되면서 못 가게 됐다”고 했다.
현주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간암 선고를 받으며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아버지는 식당 문을 닫았고, 새어머니가 근처 지역아동센터에서 급식 도우미로 일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현주는 친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새어머니가 계신다”며 애정을 표현했다. 국적이 다른 새어머니는 서툰 한국어로도 늘 “사랑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현주는 “엄마는 제가 힘들 때마다 안아주신다. 말은 안 통해도 마음은 통한다”고 했다.
하지만, 새어머니의 서툰 한국어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데 걸림돌이 됐다. 복지관이나 동사무소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니 복지 혜택을 신청하기 어려웠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아동 가구 중 15.2%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야 할 공간이 오히려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대한주거복지협회는 열악한 주거환경은 아동의 신체 건강만 아니라 정서 발달과 학업 성취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때 이랜드복지재단의 ‘SOS 위고’가 현주양 가정에 희망의 손길을 내밀었다. 현주의 딱한 사연을 접한 후 신청 72시간 만에 300만원의 주거환경 개선 지원이 결정됐다.
곰팡이 핀 벽지가 교체되고, 누수를 막는 방수 공사가 이뤄졌다. 무엇보다 재래식 화장실이 실내 수세식으로 바뀌면서 가족들의 일상이 크게 달라졌다. 현주의 새어머니는 서툰 한국말로 “따뜻한 집에서 지내니 너무 좋다”며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공사 한 달 후, 안타깝게도 현주의 아버지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주는 “아빠랑 같이 새집에서 살아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책상에 아빠 사진을 두고 매일 보니까, 항상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SOS 위고’는 주거환경 개선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어가 서툰 새어머니를 위해 교육기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현주 역시 어린 나이에 겪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정서 안정 프로그램과 심리 검사,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다.
현주는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는 “저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친구들을 돕고 싶다”며 “작은 변화가 얼마나 큰 희망이 되는지 저는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