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상계엄 사태’ 이후 노동계 파업이 철도에 이어 민간 기업, 학교 급식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근로 조건 개선” 대신 “정권 퇴진”을 외치며 ‘정치 파업’으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현대자동차 노조는 5일부터 이틀간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노조원들은 오전·오후 근무조별로 2시간씩 작업을 멈추고 파업을 벌였다. 파업 시간을 활용해 이날 오후 3시 울산 태화강역 광장에서 열린 민노총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에 참석했다. 노조원들은 이 자리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 등 구호를 외쳤다. 노조 간부들은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윤석열 정권 퇴진 3차 총궐기 대회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금속노조 산하인 한국GM 노조도 이날부터 같은 방식으로 파업에 들어갔다.
현대차 노조의 이번 부분 파업은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의 ‘윤 정권 퇴진 투쟁 지침’에 따른 것이다. 금속노조는 지난 4일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전체 조합원에게 5일과 6일 이틀간 2시간 이상씩 파업을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현대차 노조는 문용문 지부장 명의로 긴급 성명서를 내고 “위법적인 계엄령 선포는 국민을 상대로 한 선전포고이기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민주주의 회복과 윤석열 정권의 독재를 막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현대차 노조는 조합원이 4만3000여 명에 이른다. 국내 단일 사업장 노조 중 가장 크다. 현대차 관계자는 “임금·단체협약 협상 중인 상황도 아니었는데 노조가 정권 퇴진을 외치며 일방적으로 파업에 들어갔다”며 “조합원의 근로 조건 개선과는 무관한 불법 정치 파업”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쟁의권 없이 정치적 이유로 파업을 벌이면 현행법상 불법이다. 노조는 근로 조건과 관련해 사측과 갈등이 발생할 경우 노동위원회 조정 등 절차를 거쳐 파업할 수 있다.
금속노조는 오는 11일부터는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경영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마땅히 대응할 방법도 없는데 생산 차질 피해를 떠안아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6일부터는 학교 급식 근로자들이 속한 전국교육공무직 본부가 파업에 돌입한다. ‘급식 대란’이 우려된다. 교육부와 전국 시도 교육청은 이날 빵, 우유 등 대체식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은 노골적으로 ‘대통령 탄핵 운동’을 하고 있다. 민노총은 이날 오전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인터넷 링크를 개설했다. 이 링크에 접속하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윤 대통령 탄핵에 동참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민노총은 이 링크를 조합원들에게 배포했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하루종일 ‘문자 폭탄’에 시달렸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전날 의원총회를 열고 윤 대통령 탄핵 소추에 반대하기로 당론을 정했다.
5일 시작된 철도노조 파업도 비상계엄 파동을 틈탄 ‘정치 파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3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 코레일과 철도노조는 근무 형태 개편이나 추가 인력 충원 등 주요 쟁점에서 상당 부분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 관계자는 “코레일 측이 임금 인상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하는 등 노사 양측에서 협상이 타결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었다”고 했다.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 후 협상장의 분위기는 차갑게 돌변했다고 한다. 곧이어 4일 오후 9시쯤 노사 간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철도노조는 사측과 입장차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최명호 철도노조 위원장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과 해제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위한 일인 만큼 (파업에 대한) 국민 여러분 지지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를 두고 노동계에선 “철도노조가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과 발을 맞춰 정치 파업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날 철도노조 파업으로 시민들은 불편을 겪었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수도권 전철 1·3·4호선과 수인분당선, 경의중앙선 등은 열차 운행률이 평상시의 약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KTX나 새마을호를 타려던 승객들은 열차 운행이 갑자기 취소돼 역에서 발을 굴렀다. 이날 오후 7시 18분쯤 경의중앙선 중랑역 인근에서는 열차가 선로에서 1시간 30분가량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방 당국이 “숨을 쉴 수 없다”는 승객 신고를 받고 구조 작업을 벌였다. 일부 승객들은 선로 위를 걸어서 중랑역으로 대피했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1노조(민주노총)도 6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철도와 지하철 두 노조가 동시 파업을 한 건 8년 전인 2016년이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