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7시쯤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에게 “탄핵에 동참하라”고 외치는 시민들 사이사이 형형색색의 불빛이 보였다. 이들이 들고 있는 건 콘서트장에서 아이돌 가수를 응원할 때 사용하는 팬 상품인 ‘응원봉’이었다. 보이그룹 ‘NCT’의 직육면체 응원봉, 다이아몬드 모양의 ‘샤이니’ 응원봉, 사슴뿔을 형상화한 ‘오마이걸’ 응원봉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래퍼 ‘우즈’의 응원봉을 들고 있던 대학생 김모(21)씨는 “피켓, 촛불처럼 획일화된 도구보다는 나만의 물건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며 ”촛불은 바람에 꺼지지만 응원봉은 24시간 빛나고, 손목에 걸 수 있는 끈도 있어 사용하기 편하다”고 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연일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아이돌 응원봉’이 새로운 집회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젊은층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통념과 달리, “교과서에서만 보던 비상계엄이 21세기에 선포됐다”며 집회 현장으로 달려오는 20대가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집회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참여자 대다수가 중장년층일 줄 알았는데, 응원봉을 들거나 학과 점퍼를 입은 대학생들이 많아 의외였다”는 반응을 보였다.
콘서트장에서나 볼 법한 응원봉이 집회 현장에 등장한 건 개성을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성과 케이팝 문화의 보편화 때문이다. 이날 소녀시대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여한 대학생 이모(24)씨는 “젠더, 노동, 정치 성향 등 다양한 논제에 대한 나만의 의견이 있는데,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고 했다. 수원에 사는 직장인 천모(23)씨는 ”내 또래 친구들은 집에 아이돌 응원봉 하나씩은 모두 가지고 있다“며 ”굳이 촛불을 살 필요 없이 내게 가장 친숙한 물건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했다.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에도 ‘다들 응원봉을 들고 모이자’고 독려하는 글이 올라오거나 ‘탄핵봉(탄핵과 응원봉을 합친 말)’ 만드는 방법이 공유되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케이팝의 상징인 응원봉은 국내외 젊은층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용이한 도구”라며 “응원봉을 드는 행위는 시위 현장에 근조화환을 보내는 관행과 함께 집회 현장의 ‘뉴노멀’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