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이틀 뒤인 지난 5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 교정 게시판에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뉴시스

‘더는 침묵하지 않겠습니다’(계명대) ‘우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서울 강동구 명일여고) ‘계엄이 새삼스러우십니까’(서울대)….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 사태’ 이후 전국의 대학 캠퍼스는 물론 고등학교 교정까지 대자보로 뒤덮이고 있다. 교과서나 영화에서나 보던 45년 만의 비상계엄에 크게 놀랐다는 10~20대 학생들은 “종이 대자보를 써서 광장에 내걸면서 ‘디지털 익명성’에 짓눌렸던 자아가 해방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13일 서울의 주요 대학 캠퍼스엔 윤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대자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단과대·대학원·학과·자치회·동아리 차원에서 낸 성명서는 물론, 개인 자격으로 실명을 내걸고 쓴 대자보도 있었다. 학생들은 “입학한 뒤 이렇게 대자보가 많이 붙은 건 처음 본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국선언에 동참한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지난 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 /뉴스1

서울대생 김지수(19)씨는 계엄 사태 직후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퇴진에 답하라’는 대자보를 실명을 내걸고 썼다. 김씨는 “’에브리타임’ 같은 대학생 인터넷 커뮤니티는 익명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온갖 혐오 발언을 내뿜으며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는 곳이 된 지 오래”라며 “건전한 논의의 장으로는 오프라인의 실제 공간이 나을 것 같아서 대자보를 선택했다”고 했다.

1970~80년대 독재 정권 시절, 대학 캠퍼스의 대자보는 당대의 ‘소셜미디어’ 역할을 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언론 자유가 되살아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대자보 문화는 서서히 퇴보했다. 2010년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으로 잠시 부흥했지만 2020년대엔 ‘멸종’ 위기였다고 한다.

학생들은 “입학한 뒤 본 적도 없는 대자보를 비상계엄 계기로 처음 쓰고 있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이번 사태로 디지털 익명 공간에서 ‘외로운 파편’으로 존재하던 어린 학생들이 대자보를 다리 삼아 광장으로 나오면서 인간으로서의 유대감을 느끼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