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빠가 떠나가셨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18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열린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추모식’에서 희생자 고(故) 윤석호씨의 딸 윤나리씨가 단상에 올라 아버지에게 전하는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윤씨는 “여행 전날 아빠가 저에게 손녀 만나고 싶다고 놀러 오라 했던 통화 기억나세요.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만나러 갈 걸, 여행을 못 가게 할 걸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는지 몰라요”라며 흐느꼈다.
사고로 아버지 김영준씨를 잃은 딸 김다혜씨도 추모의 편지를 낭독했다. 김씨는 “지난달 29일 아침, 통화 버튼을 100번 넘게 누르며 살아서 아빠를 다시 만나길 기도했지만, 다음날 새벽 차가운 시신을 마주했다”며 “하루아침에 아빠를 못 보게 될 줄 알았다면 한 번 더 전화하고 한 번 더 사랑한다고 말할 걸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아내와 딸을 잃은 남편이자 아버지 김성철씨도 편지를 읽어 갔다. 그는 “저는 내 사랑, 내 모든 것이었던 아내 (박)현라와 딸 수림이를 잃었습니다”라며 “둘이 꼭 손잡고 하늘나라에서도 떨어지지 말고 지내다 아빠가 갈 때 꼭 와줘”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편지를 읽는 내내 붉게 충혈된 눈과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이날 합동추모식은 참사 직후부터 희생자들의 시신이 유가족들에게 모두 인도된 지난 6일까지 사망자 현황과 수색 상황을 유가족들에게 알리는 장소였던 무안공항 2층 대합실에서 열렸다.
이번 참사는 지난달 29일 오전 9시 3분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태국 방콕발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던 중 활주로 외벽에 충돌하며 발생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숨지고 2명이 구조됐다.
추모식은 희생자들의 한을 풀고 영면을 기원하는 진도 씻김굿 추모공연으로 시작됐다. 씻김굿이 끝나자 추모식장 곳곳에서 유족의 통곡이 터져 나왔다. 이어진 희생자들에 대한 헌화는 유가족 대표단을 시작으로 정부와 국회 주요인사, 지자체장 등 순서로 진행됐다.
헌화식이 이어지는 동안 희생자 179명의 이름과 공항 합동분향소 조문객과 유가족이 무안공항 합동분향소 앞 계단에 남긴 추모 메시지가 대형 LED 전광판을 통해 비춰졌다.
무안공항 합동분향소 앞 계단은 지난 1일부터 ‘수다쟁이 우리 엄마, 거기서 매일 우리 이야기하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만 보냈으면 좋겠어’ ‘언니야 어디에 있어? 언니가 있는 그곳이 평안했으면, 더는 안 아팠으면…’ ‘사랑하는 이모들 새해 복 많이 받아. 함께하는 새해는 아니지만 항상 함께하니까’ ‘어찌하여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179명의 고귀한 목숨을 보내야 하는 시련을’ 등 내용이 담긴 쪽지로 채워졌다.
박한신 유가족 대표를 비롯한 유가족 대표단은 헌화하는 내내 터져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참는 모습이었다. 유가족들도 침통한 표정으로 추모식장에 앉아 헌화 장면을 지켜봤다.
대형 스크린으로 사고 여객기가 충돌한 무안공항 로컬라이저 외벽이 비춰지자 식장에 앉은 유가족 좌석 사이에서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참사 전 가족과 동료, 친구들과 일상을 보냈던 희생자들의 사진이 스크린을 채우자 울음은 오열로 바뀌어 추모식장을 채웠다.
박 대표는 헌화 뒤 유가족을 대표해 추모사를 낭독했다. 박 대표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들은 저희의 소중한 부모였고, 사이 좋은 형·동생이었으며 귀중한 딸·아들이었고 항상 마주치던 동료이자 이웃이고 선배였다”며 “지금도 집에 가면 환한 웃음으로 마중 나올 것 같고 그분들이 생활하던 공간은 체취가 아른거린다”고 했다.
이어 “억울하게 돌아가신 희생자들의 한을 풀고 싶다”며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가족들은 추모식이 끝난 뒤 여객기 사고 현장을 다시 찾아 희생자들의 영면을 기원했다.
추모식에는 유가족 700여 명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영록 전남지사, 강기정 광주시장 등 1200여 명이 참석했다.
최상목 권한대행은 추모사를 통해 “사고원인을 규명하고 필요 예방책을 조속히 마련하겠다”며 “모든 조사 진행사항은 유가족께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상히 알리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