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글 불경인 월인석보(1459), 18세기 정조의 한글 편지 모음집 등 주요 한글 문화유산 8만9000여 점을 소장하는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지난 1일 화재가 발생했다. 유물 소실 등 피해는 없었고 소방관 1명이 부상했다. 이날 오전 8시 40분쯤,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3층과 4층 직원 공간 사이 계단에서 불이 시작돼 4층까지 번졌다. 희뿌연 연기가 한강 이남에서도 관측될 정도였다.
소방 당국은 화재 발생 6분 뒤 현장에서 진화를 시작했고 오전 9시 30분쯤 대응 1단계를 발령, 장비 76대와 인력 262명을 투입했다. 큰 불길은 낮 12시 31분쯤 잡혔지만 건물 내에 쌓인 가연물을 들어내고 잔불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려 화재 발생 6시간 42분 만인 오후 3시 22분이 돼서야 완전히 진화할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오는 10월까지 증축 공사 중이었던 박물관은 휴관 중이었고 관람객은 없었다. 소방 당국은 증축 공사 현장에서 철근을 자르기 위해 용접 작업을 하다가 불똥이 튀어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조사 중이다. 소방 당국은 공사로 인해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이날 화재 진압 현장에서 소방관 1명이 딛고 선 작업 발판이 빠지면서 2m 아래로 떨어지고 철근 낙하물에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증축 공사를 하던 작업자 2명이 구조됐고 4명은 대피했다.
박물관은 2014년 한글과 한글 문화를 알리기 위해 개관했다. ‘월인석보 권9·10’과 ‘정조 한글 어찰첩’ ‘청구영언’ 등 9건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삼강행실도(언해)’ 등 4건은 시도유형문화유산이다. 월인석보는 세조 5년에 간행된 최초의 한글 불교 경전으로, 세조가 직접 저술했다는 점에서 문화유산 가치가 높다. 정조의 한글 편지 역시 조선 왕실 문화 연구에 중요한 유물이다.
화재 당시 3층 기획전시실엔 유물이 없었고 1층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소방수가 수장고 내부 통로까지 침투했으나, 유물은 격납장에 보관돼 있어서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수장고엔 방화벽이 설치돼 있고, 화재 발생 시 하론 가스를 자동 분사해 산소를 차단, 불을 끄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번 화재 때는 불이 1층까지 번지지 않아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글박물관은 화재 발생 직후 만일 사태를 대비해 중요 유물 257점을 인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이송했다. 나머지 8만여 점 소장품도 단계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길 예정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화재 발생 직후 현장에 도착, “갑작스러운 화재 소식으로 국민 여러분께 참 죄송하다”고 했다. 유 장관은 “문체부 산하에 다중문화시설이 많은데 철저하게 점검하고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겠다”며 “국민 여러분께 걱정 끼치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비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