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에 사는 김영옥(71)씨는 눈이 올 때마다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경의중앙선 양원역까지 약 200m 구간 ‘제설 자원 봉사’를 하고 있다. 벌써 5년째다. 서울에 많은 눈이 내린 지난 6일 만난 김씨는 “‘처음엔 내 집 앞만 치우면 되겠지’ 했는데 미끄러지는 사람이 많아서 아예 역까지 눈을 치우기로 했다”고 했다. 본래 관악구의 한 사찰에서 승려로 생활했던 김씨는 수년 전 절이 철거되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동사무소에서 지원해 주는 라면으로 겨울을 난다. 그럼에도 “불교의 가르침인 보시(布施·타인에게 조건 없이 베풀며 자비를 실천)만큼은 놓고 싶지 않다”고 김씨는 말했다.
지난 3일 입춘(立春) 이후 체감 영하 20도 안팎의 혹한이 이어졌다. 우리 사회 곳곳엔 “함께 추위를 이겨내자”며 어려운 형편에도 주변에 손을 내미는 이웃이 있었다. 최저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떨어진 지난 5일 서울 동자동 서울역 쪽방촌 인근에서는 대한적십자사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고봉밥과 시래깃국을 대접하고 있었다. 사회복지사 김준형(37)씨는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사람이 굶고 얼어 죽는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냐”며 “식사 한 그릇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사람들을 보며 이 일을 계속하게 된다”고 했다.
서울 금천구에선 새벽 강추위를 견디며 인력 시장에 나가는 일용직 노동자를 위한 ‘새벽 일자리 쉼터’가 열렸다. 지난 5일 오전 4시 40분, 직원 3명이 믹스 커피, 율무차, 쌍화차 등 따뜻한 음료와 보조 배터리 등을 나눴다. 하루 평균 120명의 일용직 노동자가 쉼터를 찾는다. 쉼터 직원 이영춘(73)씨는 40년간 건설 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고 한다. 이씨는 “따뜻한 차라도 한잔하세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씨는 “오늘처럼 추우면 작업이 없는데, 그래도 일감 구하려고 눈도장이라도 찍는 사람들도 온다”며 “이른 아침에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라는 마음으로 나온다”고 했다.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방에 거주하는 쪽방촌 주민들을 대상으로 봉사 활동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 상담소의 최선관(45) 실장은 매일 490명의 쪽방촌 주민을 챙긴다. 건강이 취약한 노인 26명은 아침·저녁 두 차례 직접 방문해 상태도 확인한다. 최 실장은 “어르신들이 겨울에 많이 돌아가신다”며 “한파가 심할 때 눈까지 오면 길이 얼어붙어 낙상 사고를 당하실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상담소 1층엔 라면, 빵, 칫솔, 전기 매트, 방한 내의 등 주민들이 십시일반해서 나눈 물품들이 한쪽에 쌓여 있었다. 한 상담소 관계자는 “추운 겨울엔 따뜻한 내의 하나가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며 “이곳이 주민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엔 영세민들을 위한 ‘추위 대피소’가 들어섰다. 한파경보가 내려진 지난 4일 오후 6시, 영등포 쪽방촌 ‘밤 추위 대피소’에는 주민 5명이 모였다. 주민들은 “오늘 같은 날 집에서 자면 얼어 죽는다”고 했다. 쪽방 주민이 오자 목욕탕 사장 서현정(65)씨는 “언니 왔어?”라며 반겼다. 이곳을 찾은 주민 김모(75)씨는 “방 안에서 패딩을 입고 이불을 덮어도 얼굴이 시려 마스크를 쓰고, 집 안 싱크대 수도가 얼 정도다”라고 했다. 사장 서씨는 “쪽방촌 주민들이 오면 이미지가 나빠질까 봐 걱정도 있었지만, 주민들이 목욕하고 쉬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이제 즐겁다”고 했다.
시민들의 발을 책임지는 철로 정비사들도 분주했다. 입춘 당일이었던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행신역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경정비동엔 직원들이 한창 분주하게 철로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33년째 일하고 있는 고속차량운영처장 차승민(63)씨는 “한번 탈선하면 승객 1000명이 다칠 수 있다는 생각에 직원들이 한창 분주하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최시행(57) 팀장의 휴대전화엔 ‘열차 회송’ ‘열차 승객 하차’ 알림이 실시간으로 떴다. 최 팀장은 “철도는 곧 내 삶”이라며 “아무리 눈이 쏟아지고 기온이 떨어져도 시민들이 무사히 출퇴근할 수 있도록 정위치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