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지난 12일 찾은 강원도 속초시 노학동. 논두렁에서 고개를 드니 설악산 자락이 펼쳐졌다. 뒤편으로는 속초 시내와 청초호가 차량으로 6~7분 거리다. 2027년 이곳에 KTX 속초역이 들어선다. 서울~속초 간 동서고속화철도와 고성~부산 간 동해북부선이 속초역에서 만난다. 서울에서 1시간 39분, 부산에서도 3시간이면 속초에 갈 수 있게 된다.

이를 앞두고 속초시는 지난달 17일 ‘2025 콤팩트 시티(compact city) 워크숍’을 열고 ‘9분 도시’라는 구상을 발표했다.

속초역 주변에 미니 신도시를 만들어 주거, 상업, 복지 등 시설을 집약시키고 트램(노면전차) 등으로 속초 곳곳을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트램을 타고 9분 안에 병원이나 도서관, 관광 명소에 갈 수 있게 설계한다.

콤팩트 시티는 일본, 네덜란드 등에서 유행한 도시 재개발 방식이다. 교통 허브(hub)를 중심으로 주거, 상업, 복지 등 시설을 모아 고령화나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일본 중서부의 도야마시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도시를 압축적으로 재개발해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속초시가 콤팩트 시티 개념을 도입하는 건 KTX 개통을 기회이자 위기로 보기 때문이다. 속초는 인구 8만명의 작은 도시다. 그러나 지난해 찾은 관광객은 2447만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에 달한다. 김승환 속초시 기획팀장은 “앞으로 동서고속화철도 등이 개통하면 한 해 관광객이 3000만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압축적으로 개발해 도시의 효율을 극대화하지 않으면 관광객뿐 아니라 속초 시민들에게도 제대로 된 교통,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속초관광수산시장 주변 등은 이미 주차난과 교통 체증 문제를 앓고 있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2017년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한 이후 속초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 집값이 들썩이는 등 난개발 사례가 있었다”며 “이번에는 체계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핵심은 속초역세권이다. 속초역 일대 72만㎡ 부지에 5100억원을 들여 복합환승센터와 마이스(전시컨벤션)타운, 관광특화단지 등을 조성한다. 축구장 100개와 맞먹는 크기의 미니 신도시가 생기는 것이다. 2028년까지 토지 보상을 마무리하고 2030년 기반 시설 조성 공사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2022년 국토교통부 역세권 투자선도지구로 선정돼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 권금선 속초시 도시개발과장은 “보다 계획적이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여기에 민간 투자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속초역과 속초 시내를 트램으로 연결한다. 트램은 도로 위를 달리는 노면 전차다. 수도권 위례 신도시와 울산에서도 트램 노선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속초시는 현재 사전타당성 조사와 관련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올 상반기 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속초역~장사항, 속초역~설악산, 속초역~대포항 등 3개 노선을 검토하고 있다. 속초역~장사항 노선은 청초호 북쪽과 속초시청, 속초관광수산시장, 영랑호 등을 지난다. 속초역~설악산 노선은 설악산의 관문인 설악동 B·C지구를 오간다. 속초역~대포항 노선은 속초해수욕장과 외옹치 바다향기로, 대포항 등을 지난다.

심인철 속초시 역세권개발팀장은 “용역 결과에 따라 3개 노선 중 1개 노선을 우선 추진할 계획”이라며 “이르면 2035년 트램이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속초시는 지난해 콤팩트 시티 구상과 관련한 신규 사업 47개를 발굴했다. 올해 순차적으로 추진한다.

오는 10월 청호해안길과 외옹치 바다향기로를 잇는 해변 산책로를 개통한다. 해변 산책로를 통해 대포항, 외옹치항, 아바이마을, 속초해수욕장 등 속초시 주요 관광지를 걸어서 다닐 수 있게 만든다. 속초시는 이 길을 나중에 들어설 트램 노선과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내년에는 청초호유원지 안에 영어도서관이 문을 연다. 강원도 최초의 외국어 특화 도서관이다. 다양한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할 예정이다. 영랑동에는 올해 공공산후조리원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