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자신이 가진 지식이 최선이라는 오만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듣고 이해하며 서로 화합해 공동의 선을 찾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주위가 화평케 되는 피스메이커(peace maker)가 되도록 애쓰십시오. 그러면 앞으로 속한 사회에서도 환영받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6일 ‘한센인의 친구’ 김인권(74) 서울예스병원장은 서울대 제79회 전기 학위 수여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1975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김 원장은 평생을 한센병 환자 치료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고 2016년에 이어 서울대 졸업식 축사 연사로 재선정됐다.
그는 “환자들은 내게 의사로서 삶의 의미를 알려준 스승”이라며 한 환자를 치료하며 겪은 일을 소개했다. 수술이 필요한 척추결핵 환자가 김 원장을 찾았는데,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부했다고 한다. 당시 김 원장은 환자의 신념이 어리석다고 생각하고 “수혈을 하지 않고는 수술을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환자는 “수술이 최선인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사정에 맞게 최선이 아닌 차선의 방법을 고려해줄 수는 없냐”고 물었다. 결국 수혈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과거의 방법으로 수술을 했고, 잘 치료가 됐다고 한다. 그때 김 원장은 “내가 가진 지식이 최선이라 생각하며 환자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료하려 한 오만함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김 원장은 1983년부터 2019년까지 여수 애양병원에서 일했다. 1909년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한센병 전문 치료 병원이다. 그는 서울대 교수직도, 대형 병원 전문의 자리도 거절했다. “병원 사정상 다른 곳보다 월급은 많이 줄 수 없다. 그렇지만 원하는 환자에게 치료비를 마음대로 경감해 줘도 된다”는 당시 애양병원 원장의 한마디가 김 원장을 붙잡았다. 그는 “그 말에 다른 생각하지 않고 애양원에서의 의사 생활이 내 이상에 맞는 의사의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밤늦게까지 진료하고 수술해야만 했지만 많은 환자가 저렴한 비용으로 만족할 만한 치료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힘든 줄 모르고 지냈다”고 했다.
김 원장은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까지 노력이 제일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역시 알 수 없는 수많은 요인들이 뒷받침돼 이룬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영광스러운 졸업식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모두 빛나는 존재들이다. 졸업을 축하하며 앞날에 희망만 가득하길 기원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