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가 28일 서울시를 제치고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도전할 국내 후보지로 선정됐다. 김관영(가운데) 전북 도지사와 우범기(왼쪽) 전주시장, 정강선(오른쪽) 전북체육회장 등 도 관계자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전북도가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도전할 국내 후보지로 선정됐다. 전북은 28일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정기 대의원 총회에서 61표 중 49표를 얻어 예상을 깨고 서울시(11표)에 압승을 거뒀다. 무효가 1표였다. 올림픽 38종목 중 회장 선거가 늦어 투표인단에 포함되지 않은 대한축구협회를 제외한 37종목 단체 대의원 74명 중 61명이 이날 투표에 참여했다. 무주를 내세워 2014년 동계 올림픽 유치 도전에 나섰으나 강원도 평창에 국내 후보 도시 자리를 내줬던 전북은 이번 승리로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48년 만에 한국에서 하계 올림픽을 열기 위한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그래픽=백형선

전북과 서울은 무기명 비밀투표에 앞서 각각 45분 동안 개최 취지 설명 기회를 가졌고, 15분 질의응답과 평가위원회 조사 결과 발표 등을 거쳤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한국 전국 단위 스포츠 경기 88.5%가 수도권 외 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호주가 세 차례 올림픽을 멜버른과 시드니, 브리즈번으로 옮겨가며 개최하는 것도 나라 균형 발전을 꾀한 것”이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전북은 지난해 11월 올림픽 유치 도전을 공식화하며 ‘지방 도시 연대’를 통한 국가 균형 발전 실현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대구와 전남, 충남, 충북 등과 함께 분산 개최하는 게 저비용 고효율을 지향하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방향성과도 맞는다는 설명이었다. 전북은 올림픽을 유치하면 대구에서 육상 경기를 열고, 광주(양궁·수영)와 충북 청주(체조), 충남 홍성(테니스), 전남 고흥(서핑) 등 지방 도시들이 나눠서 대회를 연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날 전북 발표 영상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이 나와 대구에서도 올림픽 경기가 열린다는 건 영호남 화합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서울은 198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경험과 교통·숙박 등 잘 갖춰진 인프라를 강조했지만, 큰 표 차로 밀렸다. 서울은 2019년 박원순 전 시장 시절, 2032년 하계 올림픽 유치 신청에 뛰어들었다가 호주 브리즈번에 밀린 뒤 또 한 번 올림픽 유치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전북올림픽 메인스타디움 조감도./전북도

◇방심한 서울...총력전 벌인 전북

전북이 서울을 누르고 올림픽 개최지 후보로 선정된 건 이변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개표 전 대부분 서울이 당연히 이길 것으로 전망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심지어 전북 압승이었다.

이를 두고 체육계에선 서울이 너무 방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관영 전북 도지사와 정강선 전북체육회장 등 전북도 관계자들은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들과 직접 만나 대회 개최 당위성을 설명했다. 정 회장은 “새벽 2~3시에 집에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일 만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친다는 마음으로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며 “지방 도시와 연대를 통해 지방 소멸 위기를 벗어나자는 간절한 마음이 통했다”고 말했다. 체육회 관계자는 “전북은 김 지사가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질의응답까지 모두 소화했는데 서울은 오세훈 시장이 인사말 정도만 하고 대부분은 실무자에게 넘겼다”면서 “전북이 보여준 절실함이 대의원들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북을 연고로 하는 기업인들도 대거 이번 유치 과정에 동참했으나 서울에는 그런 지원 세력이 없었다. 서울은 당연히 낙승할 줄 알고 본선에만 신경을 썼다는 지적도 있다. 김관영 지사는 “많은 분이 제안한 서울과의 공동 개최안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9조원 필요...인도·印尼 등과 경쟁

관건은 전북이 과연 올림픽을 유치할 여력이 되느냐에 있다. 전북은 올림픽에 투입되는 사업비를 9조1781억원 정도로 보고 있다. 2018 평창올림픽(14조원)보다 적긴 하지만 이는 추산 규모. 얼마나 더 들어갈지 알 수 없다. 경기장을 신축하고 올림픽 규격에 맞게 기존 경기장을 개조하고, 선수촌을 새로 짓는 등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전북이 2036년 하계 올림픽을 놓고 경쟁하는 다른 나라 도시를 누를 수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현재 인도(아마다바드)와 카타르(도하), 인도네시아(누산타라), 튀르키예(이스탄불), 칠레(산티아고), 헝가리(부다페스트) 등 10여 국가가 유치 경쟁에 뛰어든 상황. 국제 스포츠계에선 인도와 인도네시아, 카타르 등 아시아 국가들을 유력 후보로 꼽고 있다. 세계 1위 인구 대국인 인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올림픽 유치에 대해 “14억 인도인의 꿈”이라고 강조할 만큼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면서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건설 중인 새 행정 수도 누산타라에서 올림픽을 열겠다는 계획. 풍부한 스포츠 인프라를 자랑하는 카타르는 중동 첫 올림픽 개최를 노린다.

IOC는 오는 3월 총회에서 토마스 바흐를 잇는 새 위원장을 선출한다. 6월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새 집행부 체제에서 2036 하계 올림픽 개최지 선정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유승민 대한체육회 회장은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전북이 유치 후보지가 된 만큼 대한체육회도 더욱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