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스프링클러.

지난달 26일 초등학생 문하은(12)양이 홀로 머물다 숨진 인천의 한 빌라(1996년)엔 스프링클러가 없었던 것으로 9일 나타났다. 현행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지은 6층 이상 건물만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이기 때문이다. 같은 달 14일 6명이 희생된 부산 반얀트리 리조트 화재 현장에도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스프링클러 미설치로 지난달에만 7명이 화재로 희생된 셈”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스프링클러 보급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실이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공동주택 단지 4만4208곳 중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은 1만5388곳(34.8%)에 불과하다. 또 황운하 의원실이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1~2023년) 전국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108명이 사망했고, 전국 아파트의 65%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 중 상당수가 스프링클러 미설치로 인한 희생자인 것으로 소방청은 보고 있다.

아파트뿐 아니라 병원, 숙박 시설 등에도 스프링클러 설치는 의무화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2018년 1월 47명이 숨진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이후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같은 해 11월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 불이 나 7명이 숨졌고, 지난해 부천·청주의 호텔·여관 화재 때도 각각 7명, 3명이 숨졌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현장에서 불이 나 인명이 희생될 때마다 정치권에선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 2018년 세종병원 화재 이후 바닥 면적 합계 600㎡ 이상인 병원은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기로 했지만 유예 기간을 2026년 12월까지로 뒀다. 소방 관계자는 “전국의 수많은 요양 병원 등이 스프링클러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노후 주택이나 숙박 시설에도 상수도만 연결돼 있으면 배관 공사를 통해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소유주는 1000만~4000만원에 이르는 공사비 부담으로 스프링클러 설치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서울 동대문구의 30년 된 건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상길(51)씨는 “식당은 가스불과 기름 등 화재 가능성이 높아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싶다”면서도 “월 매출의 2배가 넘는 설치 비용이 부담이 된다”고 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스프링클러가 없는 노후 건물은 사전 시뮬레이션으로 화재 위험성을 측정한 뒤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설치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매장 업주나 건물주를 대상으로 화재 보험료 인하나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