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산불이 강풍을 타고 영덕으로 확산된 26일 오전 매정 1리 마을 곳곳이 쑥대밭으로 변해 있다. /뉴스1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옮겨 붙은 영덕에서 얼굴에 물을 묻혀가며 1시간을 기어가 대피한 주민의 사연이 전해졌다.

영덕 산불 이재민의 딸 A씨는 산불이 번지던 중 통신 마비로 연락이 닿지 않았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지난 27일 KBS를 통해 전했다.

A씨는 “영덕군 화천리에 대피하라는 안내가 없었다”며 “집에 홀로 있던 어머니는 ‘아직 멀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귀중품을 챙기던 중 산불이 몰려왔다”고 했다.

타닥타닥 소리에 이상함을 느껴 밖으로 나와본 A씨 어머니는 연기와 불똥이 튀는 모습을 보고 챙기던 귀중품을 내팽개치고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는 “연기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차를 타고 갈 상황도 아니었다더라. 어머니는 손에 휴대폰만 쥐고 도랑으로 뛰어내려 대피했다”며 “연기가 매우면 얼굴을 강물에 적시면서 1시간을 기어갔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가 공개한 집 밖 감시카메라(CCTV) 영상에는 지난 25일 오후 8시 50분쯤 서서히 빨간 불빛이 보이며 불똥이 날아다니더니 약 10분 만에 온 집이 불길로 뒤덮이는 장면이 담겼다.

영덕의 통신 마비로 한동안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A씨는 “연락이 안 되는 3시간 동안 엄청 걱정했다”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영덕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영상을 공개했다”며 “오후 9시쯤 대피하라는 안전 문자가 도착했는데 그때는 이미 집이 화마로 다 뒤덮였던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10분 만에 불길에 휩싸인 영덕 화천리의 A씨 어머니 집./KBS

전문가들은 산불 발생 시 물이 찬 곳으로 대피할 경우 천연 보호막을 형성해 적절한 대피처가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다만 물이 마른 계곡 등에는 연기가 모여 쌓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질식의 위험이 높아져 주의가 필요하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재난·환경연구부장은 앞서 YTN을 통해 “물이 있는 계곡은 괜찮은데 보통 이 시기에는 마른 계곡이 많다”며 “진화대원에게도 열기가 갇히는 계곡에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고 교육한다”고 말했다.

영덕에서는 이날 도로에 세워진 차량에서 60대 산불 감시원 1명이 숨진 채 발견되는 등 이번 산불로 총 9명의 사망자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