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25일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으로 확산된 데 이어 27일에는 안동 도심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날 오후 5시 기준 안동 도심과의 거리는 불과 2㎞. 산림 당국은 헬기 17대, 소방차 151대, 진화대원 1000여 명을 동원해 방어진을 쳤다. 안동시는 이날 오전 “산불이 남후면 무릉리에서 시내 방면으로 확산하고 있다”며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안동 초·중·고교 74곳은 학교 문을 닫았다. 방어진 바로 뒤편에는 안동병원과 안동경찰서가 있다. 그 주변에만 안동 인구 15만명 중 1만1000여 명이 살고 있다.
대원들은 이날 저녁 일단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 산림 당국 관계자는 “이번 산불은 꺼졌다가도 강풍이 불면 또 살아나 안심할 수 없다”며 “28일 바람에 안동 시내의 운명이 달렸다”고 했다.
이날 경북 영덕과 청송에서 잇따라 사망자가 나왔다. 이로써 이번 산불로 숨진 사람은 총 28명으로 늘어났다.
산림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50분쯤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의 한 숲길에서 산불 진화대원 A(69)씨가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의성 산불이 강풍을 타고 영덕 등으로 확산하던 지난 25일 의성에서 진화 작업을 한 뒤 영덕 집으로 돌아가다가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청송군의 한 주택에선 80대 여성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남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은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북진하고 있다. 전날 지리산 국립공원의 경계를 넘었고 이날 오후까지 국립공원 내부 40ha를 태웠다. 축구장 56개와 비슷한 넓이다. 천왕봉까지 약 4.5㎞ 남았다. 하동군은 이날 오전 10시 22분쯤 ‘국립공원 탐방객들은 모두 대피해달라’는 재난 문자를 보냈다. 산청 산불의 진화 작업은 안개와 먼지 때문에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날 진화 현장에 투입하기로 한 주한 미군 블랙호크(3대)와 치누크(1대) 헬기도 뜨지 못했다.
산불이 영양, 영덕까지 빠르게 확산하면서 원전이 있는 울진도 긴장하고 있다. 영양, 영덕 다음이 울진이다. 울진에는 조선시대 궁궐을 지을 때 썼던 금강송 군락지도 있다.
◇시속 8.2㎞ 역대 최고 속도로 달린 불길… 안동은 학교 휴업
울진군은 영양에서 넘어오는 산불을 막기 위해 이날부터 영양 명동산에 진화 인력 30여 명을 배치했다. 박세은 울진 부군수는 “이번 산불은 예상보다 빠르고 풍향도 예측할 수 없다”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울진에 있는 한울원자력본부는 “소방차 4대와 소방대원 25명으로 철통 방어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이날 경북 안동과 청송·영양·영덕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추가 선포했다. 정부는 앞서 산청(22일)과 울산·의성·하동(24일)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의성 산불은 역대 산불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동해안 영덕까지 번진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청에 따르면, 의성 산불은 지난 25일 오후 강풍을 타고 빠르게 청송, 영양, 영덕으로 확산됐는데 당시 불길의 이동 속도가 최고 시속 8.2㎞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람이 뛰는 속도보다 빠른 것이다. 이는 역대 가장 빠르게 번진 2019년 강원 고성 산불(최고 시속 5.2㎞)보다 빠른 것이라고 산림청은 설명했다. 당시 의성 일대에는 태풍급인 초속 27m 바람이 불었다. 원명수 국립산림과학원 국가산림위성정보 활용센터장은 “25일 오후 2시쯤 안동에 있던 불길이 약 12시간 뒤인 26일 오전 2시쯤 51㎞ 떨어진 영덕 강구항까지 번진 것도 이 때문”이라며 “우리도 영덕까지 산불이 확산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불길이 농가를 덮치며 농민들도 절망에 빠졌다. 의성은 마늘, 영덕은 송이버섯, 청송은 사과, 영양은 고추의 주산지다. 국내 최대 송이버섯 산지인 영덕군은 지품면 국사봉 일대가 불길에 휩싸였다. 영덕 송이 10개 중 6개가 이곳에서 나온다고 한다. 영덕군 관계자는 “송이는 다시 나려면 50년은 걸리는데 이제 내놓을 송이가 다 사라졌다”고 했다. 의성군 관계자는 “피해가 너무 커 마늘 농장이 얼마나 불탔는지 아직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고 했다.
경북 영양에 있는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전날 먹황새와 참수리, 금개구리 등을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 본원 등으로 옮겼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멸종 위기 동식물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국내에서 하나뿐인 젖소 종자 공급 기관인 젖소개량사업소도 씨수소 145마리를 경기 고양 본원과 안성으로 옮겼다.
한편, 이날 오후 6시쯤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 등에는 가랑비가 내렸다. 이재민들은 비를 맞으며 “이제 집으로 갈 수 있겠다” “만세”라고 외쳤다. 비는 40분쯤 내린 뒤 그쳤다. 임상섭 산림청장은 “주불을 끌 정도는 아니지만 덕분에 산불이 확산하거나 불똥이 날아다닐 위험은 줄어들었다”고 했다. 지난 22일 울산 울주군 대운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이날 오전부터 내린 비로 불길이 잦아들면서 진화에 성공했다. 전북 무주의 산불도 꺼졌다.
전국에서 산불로 인한 이재민은 3만7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산림청은 이날 경북 의성 일대의 산불 피해 면적을 3만5697ha로 추정, 발표했다. 역대 가장 큰 피해를 남긴 2000년 강원 강릉·삼척 산불(2만3794ha)을 넘었다. 안동시 등은 전날 산불 피해 면적이 6만5000ha를 넘을 것이라고 추산했었다.